역사적인 해원의 출발점
그러면 오늘날 역사적인 해원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인가. 예수님의 슬픈 심정을 위로하며 기쁜 심정이 되게 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땅 위에 슬퍼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붙들고 슬퍼할 줄 아는 여러분이 되어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땅 위에 택한 제2이스라엘적 입장에 있는 세계에 널려 있는 기독교인들을 바라보게 될 때에, 택한 이스라엘을 다시 수습하여 하나님의 제단을 쌓고 산 제물을 드려야 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애달픈 사정이 역사적이 원한으로 맺혀져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세계에 널려 있는 제2이스라엘을 동원하여 이들의 보호자가 되고, 이들의 싸움의 대표자가 되고, 이들을 대신하여 사탄 대해 싸우던 예수 그리스도의 사정을 체휼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런 심정을 체휼하는 성도들이 되어야만 예수 그리스도의 사명을 인계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또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나섰던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사수하여 예수님이 광야에서 받으시던 것과 같은 사탄의 시험이나 가이사의 심판이나 로마 병정의 창질을 물리치고 승리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런 책임을 완수하는 하나의 동지가 있어야 하는 동시에 예수님을 모실 수 있는 하나의 가정과 종족과, 사회, 하나의 국가, 하나의 세계가 있어야 하는데, 그것들이 다 어디 갔던고!
오늘날 우리들은 단결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교단을 밟고 올라가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하여 단결해야 될 때는 왔습니다. 말씀을 통과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실체를 소유할 때가 왔다는 거예요. 구약의 말씀을 토대로 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실체를 소유하여야 할 것이었는데, 예수님이 실체 통과의 문이었는데도 이 문을 몰랐기 때문에 이스라엘민족이 였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고, 나아가 신·구약 말씀으로 통과할 시대가 지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실체 통과시대가 오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에덴의 원한이 무엇이었던고! 말씀을 잃어버린 것이 물론 원한의 조건이 되었지만 실체를 잃어버린 것이 더 큰 원한이었습니다. 그러면 누가 말씀을 딛고 올라가 실체 통과의 문을 개방시킬 것인가! 이것이 문제입니다. 이런 문이 없으니 오늘날 우리들이 이 문의 돌이 되어 이 문을 만들어야 할 사명을 짊어지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은 말씀만을 중요시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신구약 성경, 즉 수억의 사람이 읽고 있는 성경말씀보다도 이 말씀을 통과한 한 아들을 더 중요시한다는 것입니다. 그 아들은 어떤 사람인가. 말씀을 머리로 아는 사람이 아니라 심장과 몸으로 아는 사람이라는 거예요. 머리로 아는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말씀을 가슴으로 알고 몸으로 알아 하나님을 대신하여 자기 혼자서도 사탄 대해서 싸울 수 있는 실체제물을 요구하는 때가 오고 있다는 거예요.
예수가 30여 생애를 거치신 것은 하나님의 안타까운 심정을 풀기 위해 구약의 말씀을 박차버리더라도 인간 한 자체가 말씀을 대신할 수 있고 하나님의 심정과 하나되어, 어느누구도 갈라 놓을 수 없는 이 하나의 문을 이 땅 위에 만들어 놓기 위해 수고한 생애였고, 또 이런 자격을 갖춘 한사람을 찾기 위한 싸움의 노정이었습니다.
이 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예수는 돌아가셔야 할 운명에 놓이게 되자 `나는 신랑이요 너희는 신부'라는 원한의 말씀을 남겨 놓으신 것입니다.
오늘날 이 원한을 누가 해원해 줄 것인고. 하나님의 한을 풀기 위해 예수가 몸부림치시며 수고하셨지만 이 일을 성취 못하고 돌아가셨습니다. 이제 6000년 역사의 종말에 처한 오늘, 그 섭리를 인계받아 이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몸부림치며 하나님과 예수의 한을 풀어 드리는 이 땅 위의 신부는 누구일 것인가. 그 신부는 신·구약을 알기만 하는 사람이 아닐 것입니다. 오늘날 어떤 신학자도 아니예요.
예수 그리스도 30여년 동안 하나님을 위하여 숨은 슬픔을 품고 남모르는 배척을 받았습니다. 40일 동안 먹지도 않고 사탄과 싸운 예수님은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겠다고 맹세하고도 배반한 제자들을 다시 품기 위해 나섰습니다. 사람 같으면 꿈에도 만나고 싶지 않을 것이로되 예수님은 부활 후에 제자들을 다시 찾아 주셨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한 예수 그리스도이거늘 여러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팔아먹으려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를 대신해야 할 세계에 널려 있는 제2이스라엘의 기독신자는 어디로 가고 있단 말인가? 교단을 조성해 나오던 사두개교인과 바리새교인들이 전부 다 예수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말았는데, 오늘날 여러분은 그런 교단을 밟고 올라서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