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자들이 지치는 이유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40권 PDF전문보기

신앙자들이 지치는 이유

여러분이 앞으로 많은 사람을 대하게 될 때, 더우기 지도자가 되려면 그래요. 그 사람의 정상적인 기준과 비정상적인 기준, 다시 말하면 슬플 때의 기준과 기쁠 때의 기준을 가려야 합니다. 정상적인 기준을 중심삼고 볼 때, 위로 올라갔을 때는 기쁜 것이요, 아래로 내려갔을 때는 슬픈 것이다. 이렇게 눈만 보고도 표정 하나만 보고도 금방 짐작해야 합니다. 벌써 말소리가 정상적인 때는 이렇고, 기쁠 때의 말소리는 저렇더라, 좋지 않을 때는 눈빛이 어떻더라 하는 것을 가릴 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말하는 어조라든가 억양, 태도를 보고 저 사람이 저렇게 말하는 배후에는 좋지 않은 무엇이 있구나 하는 것을 하나님과 더불어 내가 감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둘이 만나러 가는 표정만 봐도 쓱 들어온다 이거야. 무슨 일이 있구만…. 아니나 달라. 이렇게 여러분이 쭉 감정한 것을 실험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것이 부합되느냐 안 되느냐 하는 것을 관찰해 보아야 합니다. 부합되었다고 느껴질 때는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는 것이 틀림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생활권내에서 내 감정이 하나님과 밀착되어 가지고 동화될 수 있느냐, 반대될 수 있느냐 하는 것을 예감을 통해 분석해 가지고 내 생활권내에 어떻게 좋은 결과를 많이 남겨 놓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이 신앙자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지나가는 사람을 보기만 해도 안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일 복잡한 것이 사람입니다. 사람을 척 보게 되면 그 사람이 오늘 교회에 와서 기도를 하고 앉아 있지만, 맥이 있구나 없구나 하는 감이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대인관계에 있어서도 그 감이 오고, 어떤 일이나 물건에 대한 감정도 들어오는 것입니다. 또, 말을 하는 데 있어서도 내가 공명체와 같은 입장에 서서 이것이 파격적이냐, 아니면 순화적이냐, 즉 화합하기 위한 것이냐하는 것을 대번에 측정해야 됩니다. 또한 몇 퍼센트나 직접적인 결과를 가져왔느냐 하는 것을 분석해야 합니다. 이러한 문제를 여러분이 개발하면 누구나 체휼신앙권내에 들어갈 수있습니다. 그런 것을 느끼고 사는 사람은 지칠래야 지칠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인들은 전부 하늘에 끌려 다니다가 하늘이 떠나 버리면 지쳐 버리고 맙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하면 체휼신앙의 중요성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신앙이라는 것은 생활권내에서 승리적 결과, 즉 생활권내에서 신의 목적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런 결과를 타진시킬 수 있는 가치적 내용이, 내가 대하기 전보다 대하고 난 후에 더 좋은 결과로 찾아진다 할 때는 아무리 핍박이 와도 그냥 밀고 나가는 것입니다. 절대 굴복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그 행한 결과가 마이너스 될 때는 아무리 힘을 내려고 해도 후퇴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후퇴할 수 있는 일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피해가 어떻겠습니까? 한 번 후퇴하고 난 다음에 그것을 바로잡기란 얼마나 힘든지 모릅니다. 한 번 실수하게 되면 그것을 보충하기가 얼마나 힘든가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되면 떨어질 수 있는, 즉 마이너스 될 수 있는 것은 생각조차 안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물건은 보려고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또, 그런 사람은 대하려고 조차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 은혜받게 될 때는 사람을 많이 꺼리게 됩니다. 물건도 함부로 이것 저것 접하지 못하고 단조로운 것만을 대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일상적으로 욕심을 갖고 움직일 수 있는 물건은 절대 대하지 못하게 합니다. 그렇지 않은 물건, 즉 무관심하게 대하던 물건들만 대하게 합니다. 대하게 되면 욕심이 앞서는 물건들은 절대 못 대하게 합니다. 말도 그렇습니다. 자기를 변명하려고 하는 말은 못하게 합니다.

실제 신앙생활에 있어서 영적 체험은 그렇게 해 놓고서 벌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와 같은 영적인 체험은 못하더라도 생활에서 느껴지는 느낌을 분석하는 도수를 높여 나가야 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이런 단계에 이르면 무슨 현상이 벌어지느냐? 삼각적인 관계에서 직접적인 결과를 타진하는 놀음이 많이 벌어집니다. 이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제 3의 일로서 나와 하등의 관계가 없는 일인데도 불구하고 관계를 맺음으로 말미암아, 계획적인 것은 아니지만 우연하게 체휼적인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체험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노력하게 되면 제 3점의 일로서 나와 관계없는 일이라도, 척 느껴지는 느낌을 통해서 관계를 맺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처럼 생활권내에 있어서 발전할 수 있는 동기를 얼마든지 찾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