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녕코 이루리라 하나의 세계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14권 PDF전문보기

정녕코 이루리라 하나의 세계

우리 통일교회의 이상한 것이 그것입니다. 통일교회 맛을 안 사람들은 통일교회에 턱 들어선 날로부터 나가려 하질 않습니다. 벌이 꿀맛을 알면 말입니다. 거기에 머리를 박고 뒤꽁무니를 까불까불하며 계속 붙어 있습니다. 벌이 꿀맛을 한번 보고 거기에 붙어 있으면 핀셋으로 꽁지를 딱 집어서 잡아당겨 봅니다. 그러면 몸뚱이가 딱 떨어지지요. 그래도 안 나오거든요. 선생님은 벌을 많이 관찰해 보아서 그런 것을 잘 압니다. 우리 통일교인들은 그래야 됩니다. 한번 맛을 들이면 누가 오라고 해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 오는 거지요. 내가 오늘 대구에 왔지만 누가 오라고 해서 왔습니까? 오라고 해서 다니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기 판단에 의해서 왜 가는가 하는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다녀야지요. 한번 맛을 들였다 하면 누가 '오라, 가라' 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오지 말라고 해도 올 것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내가 우리 교회에 못 들어오게 핍박을 해볼 생각입니다. ‘너 통일교회 다닐래 ?' 하고 말입니다.

이리하여 이념적인 형제, 하늘을 위주로 한 형제가 되어 서로 사랑을 주고 받는 세계를 이루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세상의 형제들은 타락한 형제들입니다. 사탄의 혈통을 받아 핏줄을 더럽힌 형제예요. 그런데 참다운 하늘의 인연을 중심삼고 형제된 무리와 세상의 무리가 부딪치면 어느 쪽이 끊겨야 되겠습니까? 미안하지만 세상의 형제, 즉 자기 혈육, 친척이라는 형제의 인연이 끊어져야 됩니다. 세상의 인연, 그보다 강한 무엇이 있어야 이 세상을 적극적으로 운행할 수 있습니다. 그런 활동력을 갖추지 않고 그런 힘이 없이 통일이 될 것 같습니까? 안 됩니다.

여기 모인 사람들은 그런 힘을 다 갖춘 사람들입니까? 갖추기 위해서 모여 온 거지요. '정녕코 이루리라 하나의 세계'라 했는데 이거 누가 이루겠다고 했습니까? '정녕코 이루리라 하나의 세계!' 이거 남이 하는 것입니까? 우리가 이루어야 합니다. 우리의 몸과 우리의 정신을 통하여 '정녕코 이루리라 하나의 세계', 이래야 맞지요.

그래 가지고 그런 무리들이 형제가 되어서 '우리는 자랑이라 통일의 용사' 해야 됩니다. 뭐가 자랑이냐? 천하의 만민이 하지 못한 일, 지금까지 역사노정에서 그 누구도 하지 못한 소망적인 일을 우리가 처리하고 요리하여 만민의 한과 만우주의 한을 풀어 주고, 소원을 성취할 수 있는 초석이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얼마나 신납니까? 그러니 '우리는 자랑이라 통일의 용사'하는 거지요. 용사입니다. 용사, 용사란 무수한 적을 무찌를 수 있는 기백과 용기와 연단된 장비를 갖춘 사람을 말합니다. '우리는 자랑이라 통일의 용사' 우리는 통일세계를 향해 힘차게 용진하는 통일의 용사다 이겁니다. 이렇게 용진해 보고 싶은 사람 손들어 보십시오. 자 그럼 이제 됐어요. 한번 더 불러 봅시다. 하늘의 용사 4절 시작! (노래부름)

방금 부른 노래의 제목이 무엇입니까? 하늘의 용사입니다. 하늘의 용사가 되어야 한다고 했지요? 하늘의 용사가 되려면, 첫째로 하나님의 심정을 알아야 됩니다. 나라의 충신이 되려면 군왕의 심정을 알아야 되고, 부모 앞에 효자가 되려면 아버지 어머니의 심정을 알아야 되듯이, 하늘의 용사가 되려면 하나님의 심정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 전의 심정과 창조 당시의 심정, 또한 창조 이후 인간이 타락할 때의 슬픈 심정과 그 슬픈 심정을 품으시고 복귀역사를 엮어 나오시는 복귀의 심정, 그리고 복귀된 이후의 세계를 소망하시는 그 심정을 알아야 됩니다.

오늘날 예수 믿는 사람들은 예수 믿고 천당 간다고 하는데, 그렇게 해서 천당 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고 하는데, 믿는 내용이 무엇입니까? 그저 믿는 것입니까? 나라를 저버리고 세계를 저버린 가운데서 믿을 것인가? 믿음의 한계가 어디냐 이겁니다. 이건 그냥 주먹구구식으로 그저 믿으면 구원 얻는다고요? 염불하는 것도 믿는 것입니까? 믿음의 한계가 어디냐고 하면 대답 못하고 낑낑거립니다.

믿는다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믿는 데는 어느 정도까지 믿어야 되느냐? 하나님의 심정의 뒷골목까지, 하나님의 소원 끄트머리까지 믿어야 됩니다. 믿음이란 그저 할 수 없이 하는 놀음이 아니예요. 얼마나 처량합니까? 자기 아들딸들 보고 '내가 네 아버지이니 믿어라' 하는 것 봤습니까? 불량배에게 '내가 정녕 네 아버지니 나를 믿어라' 한다고 해서 그 불량배가 믿겠습니까? 그러니 하나님이 얼마나 처량합니까? 자기 아들딸들보고 나를 믿으라고, 믿으라고 하시는 하나님이니 얼마나 처량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