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적인 책임, 연대적인 십자가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예수님이 뜻대로 살지 못한 생활무대를 재차 전개해 놓고, 예수님이 사랑하고 싶었으나 사랑하지 못한 동생이나 형을 예수님 대신 사랑하고, 예수님을 형제처럼, 부모처럼 모실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복귀과정에 있어서 만민의 형님이나 오빠의 입장에서 나왔던 것같이, 여러분도 그런 입장에 서게 됨으로써 하나님의 아들딸의 입장에 설 수 있지, 그러지 않으면 직계 자녀의 자리로 나갈 수 없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자기 자신이 어떤 입장에 있는가 비판해 보고 빨리 깨달아야 합니다. 식구는 물론이요, 이 삼천만 민족과 전세계 인류를 과연 동생같이 사랑할 수 있고, 혹은 언니나 형님같이 사랑할 수 있는 자신이 되어 있는가? 혹은 만민이 살 수 있는 길을 위해 십자가를 지고 희생하신 예수님과 같이, 희생할 수 있는 자신이 되어 있는 가? 하나님을 위하여, 부모를 위하여, 형제를 위하여 서슴지 않고 제물이 되겠다고 결의를 갖추어야만 비로소 하나님이 공인하는 아들딸이 될 수 있는 것이요, 형제와 식구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짊어진 십자가는 예수님 당시의 33년 동안의 십자가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그 십자가는 2천년의 십자가로 연결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참다운 형의 입장과 참다운 주인의 입장에서 지금까지 역사적인 인연을 이끌고 나온 것을 볼 때, 예수님이 짊어진 십자가는 그 당대에서 끝난 것이 아니라 개인으로부터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오늘날 우리들도 이 길을 가는 데 있어서는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야 합니다.
그러면 그 십자가, 또는 가야 할 길, 그것이 우리 통일교인들에게만 한정된 책임이냐? 아닙니다. 전 30억 인류가 하나님을 위주로 하여 참다운 형제와 참다운 자녀와 참다운 가정이 되기 전까지는, 십년 혹은 백년이 가더라도 개개인 모두에게 연대적인 십자가를 져야 할 책임을 더 이상 연장시켜서는 안 됩니다. 우리 당대에 끝내야 됩니다. 우리가 힘을 합하여 이것을 단축시키면 단축시킬수록 역사적인 십자가를 제거시킬 수 있습니다. 우리가 희생하면 희생할수록 민족적인 십자가를 제거시킬 수 있고, 우주적인 십자가를 제거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것을 단축시키지 못할 때에는, 이 역사적인 십자가는 현실적인 십자가에서 미래적인 십자가로 이어져 남아진다는 사실을 우리는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지방에 나가 전도할 때는 여러분 개체만 나가서 전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나라 전체를 대신하여 나가 싸우는 것이요, 전가정을 위해 나가 싸우는 것이요, 전형제와 전식구들을 위해 나가 싸우는 것입니다. 그러한 여러분이 한번 실수하면 하나님이 짊어져야 할 십자가는 여러분이 구원될 때까지 즉, 여러분 개인과 관련되는 가정과 종족과 민족 전체가 복귀될 때까지 남아지게 됩니다. 개인을 위주로 하여 전체로 연결지어 나오는 하나님이기 때문에, 여러분 각 개인이 이러한 전체적인 책임을 당대에 완결짓지 못하면, 그것이 역사적인 십자가의 고충으로 남아진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예수님도 그 당시에 짊어져야 할 십자가를 전부 완결짓지 못하고 갔기 때문에, 하나님은 2천년의 기나긴 세월을 통해 그 시대에 해결 못한 십자가의 짐을 개인적인 십자가에서부터 가정적인 십자가, 혹은 민족적, 국가적, 세계적인 십자가를 짊어지고 지금까지 나오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십자가의 길은 아직까지 끝나지 않았습니다. 다시 오시는 주님 앞에 이것을 상속해 주어야 하니, 그 주님이 영육을 합하여 개인적인 십자가에서부터 가정적, 민족적, 국가적, 세계적인 십자가까지 이 땅에서 완결짓지 않는 한 예수님의 십자가는 끝나지 않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십자가도 끝나지 않는 것입니다. 연대 책임을 짊어지고 있는 연고로 부모가 짊어진 십자가가 여러분의 십자가요, 형님이 짊어진 십자가는 동생의 십자가요, 동생이 짊어진 십자가는 부모와 형님의 십자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