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신념을 가져야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15권 PDF전문보기

불타는 신념을 가져야

민족적인 십자가, 민족적인 골고다는 누가 책임질 것이냐? 여러분들이 책임져야 합니다. 선생님은 개인적, 가정적, 종족적, 민족적인 십자가를 짊어지고 왔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이 4년노정에 있어서 참된 식구와 참된 형제, 참된 자녀가 될 날을 그리워하며 참고 나가야 합니다. 자유스럽고 평화스러운 에덴 동산의 아담 해와의 대신자로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온 천하를 자기의 소유로 하고 하나님을 길이길이 모시고 천사장을 종과 사환으로 부릴 수 있어야 합니다. 온 우주를 대신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할 수 있는 본연의 참다운 자녀의 자리를 그리워하면서 참고 또 참고 나가야 합니다.

야곱은 장자의 축복을 받고, 이 축복은 하나님이 틀림없이 이루어 주신다는 신념과 믿음을 갖고 21년 동안을 싸웠습니다. 이스라엘 민족도 애급에서 400년 동안 고역하는 핍박도상에서도,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이스라엘 민족은 반드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복지로 인도될 것이라는 신념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통일교회 여러분의 마음 가운데는 복귀의 해원성사에 대한 불타는 신념이 있어야 합니다. 슬프고 슬픈 하늘과 땅에 맺혀진 원한을 해원성사해야 됩니다. 누구를 통하여 할 것이냐? 아들딸을 통하여 할 것이냐? 형제를 통하여 할 것인가? 아닙니다. 누구도 아닌 바로 자신이 해야겠다는 신념에 불타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남겨진 십자가의 길을 향하여 총진군하지 않으면 안 될 엄숙한 시대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국내 정세를 보나 국외의 정세를 보더라도 세계는 마지막 판국을 향하여 기울어져 가고 있습니다. 이것을 수습하기 위해서는 기울어 가는 운세를 따라가는 사람이 아니라, 그것을 박차고 나가야 됩니다. 물결이 세면 셀수록 거기에 따라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박차고 밖으로 나와야 됩니다. 더우기 한국은 세계 소용돌이의 중심이 되어 있습니다. 무엇으로 보나 중심이 되어 있습니다. 좌우로 공산진영과 민주진영이 있는 틈바구니 속에서, 복잡한 삼각지대권내에서 소용돌이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 마당에 그냥 서 있다간 다 망하고 맙니다. 이것을 박차고 거슬러 올라갈 수 있어야 됩니다.

지금까지의 악한 운세를 반대적인 노정으로 거슬러 올라가도록 할 수 있는 무리와, 그런 힘의 움직임이 나오지 않으면 안 되는 곳입니다. 여기서부터 올바로 풀려 나가는 날에는 모든 것이 제대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중심이 움직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 젊은이들은 이런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은 가정에 돌아가 밥을 먹어도 그 가정권내의 식구가 아닙니다. ‘삼천리 반도에 널려 있는 통일의 젊은 형님 누나들은 이 시간에도 수고하고 있구나, 비록 나는 거기에 동참하지 못할지라도 눈물과 더불어 소망과 더불어 심정과 더불어 하나 되어야겠다’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우리의 심정이 일체가 되어야 하고, 사정을 중심삼고는 일체를 이루어야 합니다. 사정은 생활입니다. 사정을 통하지 않고는 원칙적인 자리에 설 수 없어요. 소망이 일치되지 않고는 목적의 세계를 이룰 수 없다는 것입니다.

목적의 세계를 이루기 위해서는 잃어버린 심정과 사정이 일치되든가, 아니면 소원이 일치되든가, 둘 중의 하나는 되어야 합니다. 복귀의 노정을 걸어가는 데 있어서 사정은 통하지만 식구들과 같이 행동하지 못한다고 해서 낙망해서는 안 됩니다. 행동을 못하걸랑 ‘하나님이여! 당신이 소망은 절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하는 심정으로 소망을 끌어다 심정에 불붙여 가지고 ‘삼천만 민족 앞에 나가 싸우는 통일의 무리에게 생활적으로나마 발판을 만들어 주겠다. 뜻 앞에 합당하고 자유롭게 활동하지 못하는 대신 내가 마음으로 힘을 보태 주겠다’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혹은 식구들이 찾아오면 자신은 못 나갔지만, 그들을 위해 복을 빌어주고 눈물을 흘리며 찾아온 식구들을 격려하여 또다시 힘차게 활동할 수 있는 자극을 주든가, 그렇지 않으면 같이 행동을 하여야 합니다. 같이 행동을 못 하게 될 때는 찾아오는 식구들을 후대하고, 가지고 있는 소망의 마음이 자기로 말미암아 더 간곡해질 수 있도록 그 마음에 플러스해 줄 수 있는 입장에 서면, 그 사람은 비록 행동은 못했지만 하나님의 은사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입장에 서지 못하고 찾아온 사람을 낙망케 하고 후회하게 하는 사람은 참된 식구가 아닙니다.

이 셋을 한꺼번에 다하는 것이 원칙이로되 못할 때는 둘이라도 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 대신 그 일을 하는 사람을 위해 정성을 다해 기도해 주고, 그들의 결실을 위해 눈물어린 기도를 해 주어야 합니다. 그들을 위해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해 줄 때에 그들이 보람을 느끼고 힘을 얻어 ‘이제 내가 대신 싸우겠습니다’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형제 중의 형제입니다. 그런데 그러지는 않고 ‘무얼 하려고 또 왔어? ’ 하며 박대하는 사람은 식구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