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담한 세계 가운데 통일교회가 왜 나왔는가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16권 PDF전문보기

암담한 세계 가운데 통일교회가 왜 나왔는가

그렇기 때문에 끝날에는 이런 혼란을 바로잡을 수 있는 어떠한 표적을 세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암담한 것으로부터 출발했기 때문에 암담한 결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전세계의 인류가 흑암의 권세에 사로잡혀 갈 길이 없다고 하면서 손을 들고 통곡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나를 살려 주십시오. 나를 죽여 주십시오' 하며 통곡의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아담과 해와가 눈물로써 뿌려 놓았으니 눈물로써 거두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끝날에 있어서의 타락 인간들은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모하면서 '하나님 저를 살려 주십시오'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역사의 슬픔으로 하나님의 슬픔을 대신하고, 시대적인 곡절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곡절을 풀겠다고 하면서 책임지는 자리에서 눈물을 흘릴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자기를 중심삼고 통곡하지만 우리는 이 세계를 중심삼고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개인의 그 어떠한 소망 때문에 눈물을 흘리는 자보다는 하나의 공적인 뜻을 위하여 눈물을 흘리는 자가 나타나기를 고대하고 계십니다.

아담 해와가 타락하여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게 될 때 아담 해와는 서글픈 눈물을 흘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긍휼의 마음을 베푸셔서 후손된 우리를 타락하지 않은 입장으로 부활시키기 위한 한 날을 고대해 나오셨습니다. 그러나 추방당한 인간은 역사적으로 자랑할 수 없는 대악당이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는 이러한 인간을 복귀해야 할 심정적인 인연이 있기 때문에 아담, 노아, 아브라함, 모세, 예수를 거쳐 지금까지 참아 오시면서 구원섭리를 해오셨습니다. 이러한 은사를 생각하며 우리들은 현재의 심정의 인연이 아닌 역사적인 심정의 인연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호소해야 합니다.

선생님은 이러한 심정을 가지고 이러한 사명을 세계적으로 전개시키기 위하여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싸움에 동참하겠습니까? 선생님은 옛날의 아담과는 다릅니다. 또한 모세와도 다릅니다.

하나님 앞에 역사적인 심정과 시대적인 심정, 나아가 미래적인 소망의 심정을 중심삼고 이룰 지탱할 수 있는 그 무엇을 가져야만 긍휼의 조건을 넘어서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암담한 세계 가운데 통일교회가 왜 나왔느냐? 이러한 때에 세계를 통일하자고 통일교회가 나온 것입니다. 그러면 통일은 어디서부터 하느냐? 복귀섭리의 원칙이 그러하듯이 하나에서부터 출발하여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는 하나에서부터 출발해 가지고 나타났으니 어떠한 길로 가야 하느냐? 역사적으로 걸어 나왔던 그 길을 되풀이해서 걸어가야 합니다. 30억 인류가 통일교회 문선생을 죽이겠다고 칼을 들고, 창을 들고, 총을 들고 나서더라도 선생님은 결코 쓰러져 죽지 않습니다. 싸우다가 넘어져 구르는 한이 있더라도 선생님은 승리합니다. 이러한 자리에서 지금까지 통일교회는 발전해 왔습니다.

오늘 만물의 날 행사에 여러분이 참석하여 준 것은 고맙지만, 여기 모인 여러분한테 좀 섭섭한 점이 있습니다. 통일교회의 뜻은 악한 사람도 복귀하여 찾아 세우는 것입니다. 여기 있는 여러분들은 통일교회를 지독히 반대하는 자의 사촌 팔촌들이었습니다. 만일 반대하는 자들을 일대 일로써 청산한다면 여러분들도 여기에 감히 앉아 있을 수 없으며 앉으라고 자리를 비워 주어도 못 앉는 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우하사 복귀섭리의 시대적인 혜택을 받았기 때문에 여기에 감히 발을 들여 놓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선생님은 언제나 요셉을 생각합니다. 요셉이 야곱의 열 아들인 그의 형들한테 몰리게 될 때 얼마나 처량했겠습니까? 애급의 대상들에게 팔리어 갈 때 그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그러나 요셉은 물 없는 우물에 빠져 죽어가는 자리에서도 살 수 있는 길을 찾아 30세에 애급의 총리대신이 되었습니다. 나중에 그의 형들이 살려 달라고 할 때 그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