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공 일선에 선 일본 통일교회
그런데 일본 정부측에서 우리가 하는 일들을 지켜보기 때문에, 일본사회의 저명 인사들은 물론이고 일본 정부의 고위층, 경제인들 대부분이 배후에서 후원의 손길을 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이 벌어짐으로 말미암아 일본 공산당들은 상당히 당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그들은 조직적이요 체계적으로 반박 활동을 하는 단계에 처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시점에서 일본 통일교회가 어떻게 해야 할 것이냐 하는 전반적인 문제를 선생님이 구보끼 협회장에게 지시했습니다. 이 책임을 수행하면서 꺾임을 당해서는 안 됩니다. 이만큼 벌여 놓은 무대 위에서는 이제 생명을 걸어 놓고 싸워야 됩니다. 일본이 현재 아시아의 문제라든가, 국제정세의 전반적인 문제를 중심하고 앞으로 한국과 더불어 해야 할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각오와 신념을 갖고 싸우라고 격려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도 보고를 들어서 알겠지만, 일본에서는 10여 년 동안 전국에서 이 일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여러분들도 알아야 됩니다.
우리 한국은 반공을 국시로 하는 국가이고 북위 38도선 이북의 북한은 공산주의를 국시로 하기 때문에, 그야말로 남북이 일대일로 서로 대립되는 현장이 삼팔선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일본에 있어서는 다른 사람의 생명을 해하려면 어느 때든지 칼을 빼서 찌를 수 있는 현실이기 때문에, 이런 입장에 처한 일본 통일교인들은 개인 대 개인의 그 사이가 삼팔선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현재 우리 한국 삼팔선에서 일어난 상황보다 더 위험합니다. 우리 한국에는 완충지대를 두고 그 중앙에 한계선을 그어 놓았지만 일본은 그렇지 않습니다. 자기들을 반대하는 사람에게 앙심을 품고 앙갚음을 하려고 한다면 언제든지 할 수 있는 환경에 놓여 있는 것이 현재 일본의 실정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원리연구회나 교회의 젊은 청년들에게 선생님이 일을 시킨 것은 금후 아시아의 방향이라든가 세계적인 사조를 볼 때, 필시 이런 일을 국가적으로 하지 못하면, 또 어떠한 무리가 희생되더라도 이 일을 할 수 있는 동기를 만들어 놓지 않으면 안 될 것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작년부터 이 일을 강력히 추진한 것입니다.
선생님이 1965년 제 1차 세계순회 도중 일본을 거치면서 이런 일들을 명령하고 싶은 마음이 불같이 타올랐지만 말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일본 방문이 처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선생님을 아무리 존경하더라도, 그들을 처음 만나 가지고 반공을 하라는 것을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 당시의 일본은 어느 누구든지 거리에 나가서 반공이란 말을 입 밖에 낼 수 있는 입장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선생님이라는 사람이 가서 그들에게 반공하라고 말했다면 그들에게는 여러가지 어려운 점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또 그때는 반공이념을 중심삼고 출발하라고 명령할 수 있는 그런 사명적인 입장이 안 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때에 기회를 놓친 것입니다.
만일 그 당시에 그들이 선생님을 이해했더라면 지금은 이러한 명령을해서 우리가 활동개시할 수 있는 기반을 닦았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다면 오늘날 일본에 있어서 우리 통일교회는 그 활동 실적을 통해 정부뿐만이 아니라, 전국민이 끌려오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서 추앙을 받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3년 이상의 시간을 놓친 것을 후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늦었다고 해서 안 할 수는 없습니다.
앞으로 일본에 대한 전반적인 문제를 감별해 보면, 좌익활동 문제가 제일의 문제로서 반드시 우리가 넘어가야 할 그런 과정이 지금 전개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