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자는 하루하루의 생활을 바르게 하는 것을 중요시해야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57권 PDF전문보기

신앙자는 하루하루의 생활을 바르게 하는 것을 중요시해야

모든 것이 이와 같은 관계에서 연결된다고 본다면 우리 인간의 일생도 마찬가지 입장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유년시대가 있는가 하면 청소년시대가 있고 청년시대가 있고, 장년시대가 있고, 노년시대가 있습니다. 작거나 크거나간에 그 형태에 있어서는 그와 같은 과정을 거쳐가고 있는 것입니다.

생애라고 하게 되면 일생을 말합니다. 생애라는 것은 긴 것을 말합니다. 태어나 소년시대를 거쳐, 청년시대를 거쳐, 장년시대를 거쳐 노년시대까지 즉, 태어나서부터 운명할 때까지의 과정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과정이 생활을 통해서 연결되는 것입니다. 그 생활이라는 것은 우리가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생활이 그릇되게 될 때에는 생애도 그릇된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생애를 남기려고 해도 하루하루의 생활이 그릇되게 될 때에는, 그 생애가 기필코 그릇된 결과에 도달하는 것은 어찌할 수 없는 결론인 것입니다.

이걸 두고 볼 때, 신앙자로서 제일 중요시해야 할 것이 무엇이냐? 자기 일생을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님을 위해서 바치겠다고 맹세하더라도, 그 맹세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올바르게 바친 하루하루의 생활이었느냐가 문제인 것입니다. 그 터전을 이어나갈 수 있는 하루의 생활을 생애의 어떤 가치보다 더 중요시하지 않고는 보람 있는 생애가 나올 수 없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게 될 때에 우리는 하루를 무심코 시작하지만, 이 하루가 우리가 바라는 영원한 뜻의 목적과 방향이 엇갈려 가느냐 바로 가느냐 하는 놀음을 하는 하루라는 것을 언제나 생각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생각지도 않은 불의의 행동으로 말미암아 영원한 뜻의 길 앞에 반역자가 될수 있는 일도 그 하루의 생활 가운데서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을 더 세분해 보면 한 시간권내에도 그런 일의 경계선이 좌우되는 것이요, 그 한 시간, 혹은 한 분, 한 초가 문제인 것입니다. 그 한 분, 한 초가 잘못되면 이 방향이 영원히 엇갈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중차대한 문제가 오늘 하루보다는 한 시간, 더 나아가서는 한 분에 있고, 한 순간에 좌우 된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에, 오늘 하루를 중요시하는 것보다 한 시간을 중요시해야 되겠고, 한 시간을 중요시하는 것보다도 한 분, 한 초를 중요시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문제가 우리에게 걸려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나침반은 남북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아무리 동쪽으로 혹은 서쪽으로 돌려 놓더라도 그것은 남북을 향하는 것입니다. 다른 힘의 제재를 받아 불가피하게 그러한 자리에 있더라도 그 힘의 작용이 없어지게 되면 자동적으로 남북을 향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반대로 돌려 놓는다 해도 거기에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대항하여 자기 본래의 방향을 향해서 돌아가고자 하는 힘의 작용이 언제나 있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 인간 자체도 하나님을 중심삼아 남북의 방향을 가리키는 나침반과 같이 한 방향을 지시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 방향이 만일 엇갈리게 되면 엇갈리는 차이만한 그 무엇이 있어야 합니다. 나침반을 동서의 반대 방향으로 돌려 놓으면 자기 위치로 돌아가고자 하는 힘의 작용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하나님을 향하는 양심의 방향성이 있어 가지고 우리를 반대적인 방향으로 돌려 놓으면, 내적인 면에서 자기의 마음이 그 반대의 작용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하는 그 무엇이 있어야 됩니다.

그러한 작용이 없다면 우리 인간은 일생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과 일치될 수 없고, 그 목적에 귀일될 수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한 작용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떠한 사람에게도 있는 것입니다. 그 작용이 뭐냐? 양심작용입니다. 보다 순수한 자석으로 만든 나침반일수록 보다 남북에, 일치되는 방향을 지향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순수한 양심을 가진 사람일수록 그 방향은 언제나 일치되기 마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매일같이 방향을 일치시킬 수 있는 생활을 그려 가야 됩니다. 여기에 선악의 환경이 부딪치는 것입니다. 왼쪽으로 치우치는 일도 있고, 바른쪽으로 치우치는 일도 있을 것입니다. 마치 나침반 위치를 조금만 이동하게 되면 중심을 찾기 위해서 왼쪽, 오른쪽을 왔다갔다하면서 남북과 일치되는 방향을 향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 자신들도 언제든지 하나의 목적, 그 목적과 일치되는 자리를 그려 가야 될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마치 우리 인간 생활이 그와 같은 입장에 서 있지 않느냐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우리의 하루가 중요한 하루가 아닐 수 없고 한 시간이 중요한 한 시간이 아닐 수 없다는 것입니다.

순간의 경계선이라는 것은 하루, 한 시간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한 분, 한 초라는 순간을 중심삼고 선악이 판결되어져 나가는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하루를 영원과 같이 느낄 수 있는 가치가 이 하루 가운데 있는 것이요, 한 시간을 하루와 같은 가치의 내용으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그 한 시간에 있는 것이요, 한 시간은 분, 초로도 결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내용이 보다 작은 순간에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하나님의 뜻은 변할 것이냐? 뜻은 영원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 인간이 아무리 변하고 환경이 아무리 변하더라도 하나님의 뜻은 변할 수 없는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변할 수 없는 뜻에는 개인이 가야 할 뜻도 있고, 가정이 가야 할 뜻도 있고,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이 가야 할 뜻도 있을 것이요, 혹은 세계의 36억 인류가 공동적으로 가야 할 뜻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영원한 세계에 가서 영원히 하나님의 뜻 가운데 생활하게 될 때에 맹목적이요, 무질서요, 무방향인 입장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어떠한 뜻을 중심삼은 생활로부터 영원한 생애가 시작될 것이 아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생각하게 될 때, 우리가 살고 있는 하루의 생활이라는 것이 얼마나 심각한 생활이냐는 것입니다. 죽는 것도 한순간에 결정되는 것이요, 나는 것도 한 순간에 결정되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나고 죽는 것이 한 순간에 벌어지고 우리 일생의 운명이 한 시간, 한 분, 한 초, 한 순간에 좌우된다고 할 때 우리가 사는 하루의 생활 자체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내가 슬퍼하는 것도 이 순간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하루를 계획해서 그 계획대로 슬퍼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슬픔의 동기는 있겠지만 슬프다는 사실은 순간에 결론지어지는 것입니다. 기쁘다는 것도 역시 아침과 같이, 낮과 같이, 저녁과 같이 밤과 같이 과정을 거치겠지만 그 기쁘다는 것의 종점을 볼 수 있는 시점은 순간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두고 볼 때, 우리가 한번 호흡을 하고 한번 동작하는 것도 뜻과 더불어 일치될 수 있는 놀음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사격장에 가서 사격을 해보면 알지만 총을 쏘아 표적을 맞추려면 총 끝하고 타겟트가 일치되어야 합니다. 앞의 가늠자와 끝의 가늠쇠와 타겟트가 일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조금만 엇갈리는 날에는 동서 사방으로 벗어 나는 것입니다. 잘 보이지 않는 타겟트의 중심점을 때린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것입니다. 사격장의 거리는 대개 10미터인데 10미터 거리에 있는 중심점도 맞추기가 어려운 일이 아니냐는 거예요.

그런데 영원을 두고 일생 동안 표적을 맞추어야 된다면, 영원을 두고 표적을 맞추어야 된다면, 다시 말해 출발한 것이 영원히 가 가지고 적중시켜야 된다는 입장이라고 한다면 얼마나 어렵겠어요? 어렵다기보다는 말도 할 수 없으리만큼,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어려운 것이 아니냐는 거예요.

인공위성을 달을 목표로 쏠 때도 달의 위치와는 다른 방향으로 쏘아 올리는 것입니다. 이동하는 달을 맞추기 위해서는 그래야 됩니다. 순간에 맞아야 됩니다. 거리를 계산하고 달의 이동하는 속도를 계산하여 방향을 맞춰야 달나라에 착륙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달나라에 도착한다는 것도 어려운 것입니다.

우리 인간도 쏘아진 총알과 같이 일생을 통해서 한 목적을 향해 가는 것이 아니냐. 가긴 간다고요. 먹고 자고 깨고 반복된 생활을 하고 있지만 무엇인가를 향하여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 가는데 어디로 가느냐? 이게 문제입니다. 하루는 어디로 가느냐? 또 하루는 어디로 가느냐? 이달은 어디를 향해 가느냐? 다음 달은 어디를 향해 갈 것이냐? 일년 열두달 365일은 어디를 향해 갔느냐? 섣달 그믐날 가서 회상해 볼 때, 내가 출발한 점과 결과의 점이 일치되었느냐, 내가 해 나온 생활이 그 뜻이 가는 방향과 일치되었느냐 하는 것을 두고 볼 때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