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민족의 무지와 불신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04권 PDF전문보기

이스라엘민족의 무지와 불신

그러면 하나님의 뜻을 품고 왔던 예수 자신의 슬픔은 무엇인가. 억울함이 무엇이었으며 분한 것이 무엇이었던가. 고통 중의 고통이 무엇이었던가. 인간을 위한 생명적이고 이념적이고 사랑이 넘치는 천적인 말씀을 지닌 자신인 것을 알면서도, 말씀을 다하지 못하고 가는 예수의 그 심정, 생명을 다 주고 가지 못하는 예수의 그 심정, 인간이 즐거워 할 수 있는 이상을 주고 가지 못하는 예수의 그 심정, 천적인 사랑을 주고 가지 못하는 예수의 심정이 그에게 있어서는 가장 큰 슬픔이었음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수천년의 역사과정을 거쳐 오면서 우리의 선조들을 세워 천륜의 뜻에 협조하게 했지만, 우리의 선조들은 시대시대마다 하늘을 배반하였습니다. 따라서 하늘을 배반한 선조를 가진 우리들이기 때문에 오늘날 끝날에 처해 있는 우리 자신들도 또다시 역사적이고 우주적인 배반의 무리가 되기 쉬운, 이런 어마어마한 기로에 서 있음을 느껴 알지 않으면 아니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한 사람으로부터 모세를 거쳐, 즉 수천년 동안의 수고를 거쳐 비로소 하나의 말씀의 중심체, 생명의 중심체, 이상의 중심체, 사랑의 중심체로서 택한 이스라엘백성 앞에 약속하여 보내신 분이 바로 메시아인 예수였습니다. 그런데 이 메시아 한분이 오시기를 수천년 동안 고대하고 준비하였던, 즉 역사적인 공적 위에 섰던 유대백성들은 정작 오신 메시아를 모시지 못했습니다. 역사과정의 수많은 선조들이 소망 하던, 그 역사적인 주인공으로 모셔야 할 예수였는 데, 그를 모신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베들레헴의 말구유에 누우셨던 예수를 자랑하는 무리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때 당시 베들레헴에 메시아가 나타나리라는 예언이 있었는 데, 그 예언에 따라 메시아를 맞기 위하여 초막 한 칸이라도 지어 놓고 기다린 무리는 그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당시 베들레헴에 주님이 불시에 오시지 않을까 염려하고 그 때와 시기를 심중에 품고 준비한 어떠한 초막의 주인이 있었는 지 모르지만, 정작 메시아가 나타났을 때 모시려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예수가 태어나실 때 예루살렘 온 성중이 소동하였습니다. 베들레헴에서 메시아가 난다는 소문이 쫙 퍼졌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 성중이나 베들레헴 성중의 어느 한 사람, 메시아의 탄생을 준비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하늘의 황태자요 만민의 메시아이어야 할 예수님께서 말구유에 누우신 가련한 모습이었다는 것을 오늘날 믿고 있는 크리스찬들은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또 하늘의 사정을 말하고 증거했던 메시아인 예수를 이스라엘민족이 몰라보았기 때문에 오늘날 이스라엘이 하늘 앞에 설 수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메시아도 땅에 오시면 입을 것이 있어야 하고 살아야 할 집도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 하늘을 믿고 있던 바리새교인, 믿고 있던 사두개인, 또는 온 유대교인 가운데는 나타난 메시아를 모시기 위하여 방 한칸이라도 준비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망령되이 하늘을 믿고 나왔던 우리 선조들이 저끄러 놓은 죄상을 놓고 오늘날 우리는 슬퍼하여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그러한 역사적인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 마음으로 염려하며 하늘 앞에 호소하는 무리가 되어야겠습니다.

하늘이 4천년 동안 메시아 한분을 보내기 위하여 이스라엘민족을 준비하였는 데, 예수의 사정이 그렇게 될 줄이야! 4천년 동안 준비한 수고는 어디 갔던가. 하늘이 약속한 하나의 택한 아들을 보냈는 데 당시 아무 것도 모르고 깊은 잠 가운데 처해 있는 유대백성이요. 깊은 잠 가운데 처해 있는 예루살렘이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주권을 대신할 수 있는 자기들의 교단을 자랑하던 무리였습니다. 또 그러면서 하늘의 뜻을 받들려고 하던 유대교단이었습니다. 이러한 백성 앞에 예수님께서 나타나시게 된 것은 하나님의 뜻을 대해야 하는 인간과 뜻을 섭리해 나가시는 하나님 사이에 가로 놓여진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을 여러분은 잘 모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