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에 대한 참된 믿음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04권 PDF전문보기

예수님에 대한 참된 믿음

예수님께서는 30세에 이르기까지 목수생활을 했습니다. 만일 신령한 영적 체험을 한 사람이 있다 할진대는 예수의 30년 생애의 일단을 알 것입니다. 그것을 아는 사람이 있다 할진대는 좋은 밥을 먹을 때도 가슴이 아플 것이고, 좋은 옷을 입을 때도 가슴이 아플 것이며, 좋은 환경에 처해도 가슴이 아파 서글픈 생활을 하게 될 것입니다.

요셉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마리아를 데려올 때에는 하나님이 함께 했습니다. 그런데 그후 요셉가정에서 자라난 예수는 의붓 자식으로 천대를 받습니다. 요셉의 아들 딸이 많아짐에 따라 예수는 점점 고립된 입장에 처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자기의 사정과 심정을 말하지 못하고 더벅머리 총각으로서 30여 평생을 톱과 대패를 들고 남의 문짝을 짜면서 지냈습니다. 이런 예수의 사정을 어느 누가 알았느냐는 것입니다. 아무도 몰랐습니다. 그때 당시에 예수는 오늘날 여러분들이 믿고 있는 역사적인 예수로서, 역사 적으로 평가받는 인격을 가진 그리스도로서 나타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끝날에 나타나는 메시아를 맞을 사람은 누구일 것인가?

역사적인 예수의 인격을 모시는 사람이 아닙니다. 시대적인 예수의 인격을 모시는 사람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될 것입니다.

천륜의 뜻을 마음에 품고 이 땅을 대해 염려하는 예수였는 데, 자기 부모가 자신을 몰라보고, 형제 역시 자신을 몰라보는 이러한 서러운 입장에 처한 예수였음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그러한 예수를 믿어야 되겠습니다. 우리 통일교회 신자들은 믿되 그런 예수부터 믿어야 되겠고. 알되 그런 예수부터 알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예수, 죽음길을 걸어가신 예수님을 알고 있지만, 사실은 살길을 찾아오신 예수였다는 것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저 돌아가신 예수님을 붙들고 우는 무리가 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죽기 이전에 죽음을 바라보고 준비하던 그 심정을 어느누구에게도 토로할 수 없었고, 하늘 땅의 염려와 하늘 땅의 슬픔과 하늘 땅의 원한에 사무쳐 있는 자신의 심정을 어느누구에게도 토로할 수 없는 처참한 사정에 처해 있었습니다. 그러한 입장에 처한 예수를 붙들고 울 수 있는 무리, 그 예수의 사정을 통할 수 있는 무리, 그 예수와 친구될 수 있는 무리가 있었다면, 그들이 예수님의 사도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웬일이뇨? 갈릴리 해변가에서 고기잡이하던 어부인 베드로가 어찌하여 예수의 수제자가 되었던가? 이것이 복통하여야 할 사실이었습니다. 유대교는 어디 가고, 택한 민족은 어디 가고, 하늘의 뜻 가운데도 없던 난데없는 이 베드로, 또는 어부들이 예수의 제자가 되다니 웬일이뇨? 예수는 분한 마음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환영하는 유대백성이 없어서 서러워하신 예수님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여러분은 주를 믿되 죽어간 예수만을 믿지 말고, 살아서 일하셨던 그 예수를 믿어야 하겠습니다.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만을 믿을 것이 아니라 30여 평생을 통하여 하늘 뜻을 염려하신 그 예수를 믿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의 생애노정에는 뜻을 위한 한숨의 생활이 가해 있고, 서글픔의 심정이 가해 있으며, 그 위에 또한 십자가의 슬픔이 가해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골고다에서 고난당하던 예수의 심정을 아는 사람이 땅 위에 어디 있습니까? 그의 친구될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예수님에게는 가정에서부터 친구가 있어야 하고, 형제 가운데 친구가 있어야 하고, 모든 아버지를 대신하고 어머니를 대신할 수 있는 친구, 교회를 대신할 수 있는 친구, 예수님이 질 십자가를 대신 질 수 있는 친구, 더 나아가서는 세계의 십자가의 길, 골고다의 길을 대신 갈 수 있는 친구가 있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그러한 뜻을 알고 예수를 믿는 사람이라곤 한 사람도 없습니다.

역사적인 뜻을 위하여 오셨던 예수가 육신을 쓴 인간으로 나타나셨으나 시대적으로 불우한 환경 가운데서 활동하시다가 쓰러짐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이 남기신 뜻을 따라 역사노정을 걷고 있는 인간들 역시 불우한 시대적 환경에 처하여 예수를 부르짖게 되었습니다. 또 예수가 골고다의 십자가를 진 거기에는 전우주가 걸려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골고다의 친구를 찾아 헤매는 하늘의 심정인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즉, 골고다의 심정을 알아줄 친구를 하늘이 찾아 헤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신랑으로, 성도들을 신부로 비유하셨는 데 예수의 신부가 될 사람은 어떠한 사람일 것인가? 골고다의 노정에서도 친구가 되어드릴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