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취할 것인가
지금까지의 역사를 모두 수습한다면 다음엔 무엇을 갖고 세계적인 인연을 맺을 것인가? 이것이 오늘날 뜻과 포부와 희망이 있는 청춘 남녀들이 해결해야 할 중대한 문제입니다. 또 무엇을 붙들고 무엇을 버릴 것인가 하는 것이 끝날의 심판을 바라보고 있는 수많은 인류가 최후의 행동을 위해 선택해야 할 문제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시의 시대상황으로 볼 때 민족의 반역자였습니다. 교단의 반역자요, 종족의 반역자였으며, 나아가서는 전통의 파괴자였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에서 그는 파괴자가 아니라 건설자요, 반역자가 아니라 애국자요 애천자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인간들은 오늘에 와서야 알았습니다.
우리가 참다운 애국자를 말한다면 그는 어떠한 사람일 것인고. 참다운 애국자, 참다운 민족주의자라 할진대 예수와 같이 세계를 하나의 민족으로 알아야 합니다.
골고다의 길, 십자가의 길을 늠름히 걸어가시던 그 모습이 우리가 숭배해야 할 분의 모습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억울하게 이러한 형극의 노정을 가셨는데, 그 억울함을 알아 주는 무리는 어디에 있을 것인고. 가신 분의 순교의 터전이 땅 위에 남아 있고 그의 슬픔이 하늘에 사무쳐 있는 한, 이루어야 할 하늘의 뜻이 남아 있는 한, 그 모든 슬픔을 풀 수 있는 역사적인 종말의 때는 반드시 올 것입니다. 그때를 말하여 우리는 심판날이요, 말세요, 종말이라 하는 것입니다.
이제 종말시대임을 가슴 깊이 느껴지는 이때에 여러분은 어디로 가야하고 무엇을 취해야 될 것인가? 이것은 여러분이 자문자답하여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예수님의 단호한 행동을 모방하여 나설 수 있는 무리가 과연이 민족 가운데 있을 것이며, 이 세계 가운데 있을 것인고? 우리는 시선을 달리하여 다른 각도에서 그러한 무리를 찾아볼 줄 아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 예수께서 죽어가신 그 시대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무엇이 다릅니까? 아무것도 다른 것이 없습니다. 없어요. 아무것도 다르지 않은 시대에 살고 있는 오늘날 우리들이, 그 시대에 배척받던 예수를 모실수 있겠는가 하는 것을 생각해야 할 문제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세계를 찾아가는 이때에, 평등을 부르짖는 공산주의는 어떠한가. `노동자 농민을 살리자, 같이 먹고 같이 살자'고 외치고 있습니다.
역사의 흐름을 다시 한번 관찰하여 봅시다. 앞으로 세계를 움직일 수 있는 민족은 어떤 민족일 것인가. 세계를 움직일 수 있는 주의는 어떤 주의일 것인가. 세계를 움직여낼 수 있는 종교는 어떤 종교일 것인가. 그것은 먼저 말씀드린 바와 같이 선의 이념에 화하여 모든 것을 거기에 맡기고 행동하는 종교일 것입니다.
이것이 무슨 말이냐 하면, 선이라는 것은 자기를 중심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기의 가정을 위주하고 살다가 망하지 않은 가정이 있습니까? 자기 일개 국가를 중심삼고 세계를 찾으려 했던 민족 중의 남아진 민족이 어디 있습니까? 이런 주의를 중심삼고 이 세계를 지배하며 영원불변의 이념을 찾았다고 장담할 수 있을 것 같지만 두고 보십시오. 하늘을 빼놓으면 만사가 끝입니다. 본래의 인간은 하나님을 모시고 천륜을 중심삼고 살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한 인간의 생활에서 천륜의 조건을 대신한 것이 무엇이냐 하면 인간이 갖고 있는 양심의 기준입니다. 이 양심의 기준 앞에 이념이 있고, 이념의 기준 앞에 천정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내적 환경에서 천륜을 찾아 들어 가는 것이 복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