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세우려면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33권 PDF전문보기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세우려면

아담 해와가 타락한 것이 무엇이냐? 그들이 타락하기 전에 하나님께 먼저 물어봤다면 타락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물어 보는 것이 책임분담 5퍼센트예요? 물어 보는 것은 자유입니다. '천사장이 이러고 저러고 하는데 어떻게 합니까?' 하고 물어봐야 했습니다. 그랬으면 하나님이 답변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물어 보지 않고 횡적 관계를 맺어 버린 것입니다. 그것이 문제입니다. 물어 보지 않고 행동했기 때문에 문제가 벌어진 것입니다. 언제든지 그렇습니다. 여러분들이 자신의 책임분닫 5퍼센트를 감당할 자신이 있어요? 아무것도 없으면서 날뛰는 별의별 귀신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런 정신 가지고 언제 통일시키겠습니까?

원리라는 말은 공식이라는 말입니다. 원리가 뭐냐? 원칙적인 이치지요. 그러면 원칙적인 이치는 뭐냐? 공식입니다. 그렇지요? 이 길 외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이 길을 가야 하고, 이길을 가려면 믿음의 아들딸을 세워야 합니다.

아담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아담 가정의 여덟 식구를 전부 잃어 버렸습니다. 다시 말해서 아담과 해와, 즉 부모를 중심삼고 세 아들딸을 잃어버렸으니 이 세 아들딸을 찾아 가지고 돌아가야 됩니다. 여기서(도표로 설명하심) 떨어졌기 때문에 다시 이 자리까지 올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곳이 바로 장성기 완성급입니다.

그러면 장성기 완성급에서는 무엇을 해야 되느냐? 실체기대를 복귀해야 됩니다. 믿음의 기대와 실체기대를 복귀하여 메시아를 위한 기대권내에 들어가야 됩니다. 메시아를 맞이할 수 있는 권내로 들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메시아를 맞이해야 원죄를 청산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럼 원죄 청산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 선생님이 어떤 조건을 중심삼고 축복해 줘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축복식 때에 성주(聖酒)를 마시는 것이 원죄를 청산하는 의식인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것을 몰랐을 거예요. 이러한 절대적인 내용을 중심삼아 가지고 하늘과 땅에서 사탄세계를 분립시켜 가려나오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원리가 그렇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기대를 중심삼고 실체기대를 통과해서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세워야 합니다.

그러면 메시아를 위한 기대가 무엇이냐? 메시아를 위한 기대는 내가 메시아를 위해 세우는 기대이지, 메시아가 나를 위해 세우는 기대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절대 따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밤에는 좋아하고 낮에는 싫어하고, 이것은 좋고 저것은 싫다고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아무 데나 들여보내도 감사히 갈 줄 알아아 됩니다. 그런데 꺼떡거리면서 선생님이 지금 어떻고 어떻다고 하며 선생님이 하지 말라는 것을 하는 사람은 귀신이요, 도깨비지 뭐예요? 그것이 사탄이라는 것입니다.

에덴 동산의 아담 해와도 하나님이 하지 말라고 한 것을 해서 타락을 했는데, 선생님이 하지 말라고 한 것을 하면 복귀될 것 같아요? 그런 놀음에 춤추는 선생님이 아닙니다. 그런데 별의별 것들이 다 와서 신경 쓰이게 합니다. 두고 봐요. 그런 사람들이 나중에 어떻게 되는지.

그러니 하나님을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신의 섭리, 즉 하나님의 섭리는 역사성을 띠는 것입니다.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에게 원리를 가르쳐 주면 뭘합니까? 원리의 내용이 무슨 레코드 판인 줄 알아요? 그것을 그냥 그대로 재판(再版)하여 가지고 그것으로 전도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게 하나님을 알게 하고 하나님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까? 하나님과 여러분의 관계를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이런 내용을 두고 볼 때, 문제는 어디에 있느냐? 하나님을 아는 데에 있습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위해 일해야 합니다. 자기를 위해 일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왜 자기를 위해 일하느냐는 것입니다. 어디에 복종하느냐는 거예요. 하나님을 위해 일한다고 했으면 자신이야 망하든 흥하든 개의치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일을 했으면 그것으로 만족해야 합니다.

그런데 무슨 조건이 그렇게 많으냐는 것입니다. 말은 하나님을 위한다고 하면서 결국은 자기를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냐는 겁니다. 그렇지 않아요? '교회에서 날 몰라 주고 뭐 어떻고, 선생님이 날 몰라 주니 무엇이 어떻고 어떻고……' 그것이 누구를 위해서 그러는 것입니까? 선생 님은 누구를 위해서 살고, 하나님은 누구를 위해서 일하라는 겁니까? 결국 자기를 위하여 일해 달라는 것 아닙니까? 안 그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