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지 않고는 본연의 세계로 돌아갈 수 없다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34권 PDF전문보기

사랑하지 않고는 본연의 세계로 돌아갈 수 없다

그 하나님의 사랑이 왜 좋으냐? 자기를 위한 사랑이 아니라 전체를 위한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사랑은 전체에게 다 주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주고도 남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또다시 주체에게 돌아옵니다. 바로 이런 사랑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는 것도 그 사랑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랑에 접한 사람이 주체의 사랑에 완전히 화합하게 될 때에는 상대적인 인간을 통해 그 사랑을 다시 돌려 보내는 것입니다. 이렇듯 인간은 돌려줄 수 있는 내용을 가졌기 때문에 영원한 것입니다.

입력과 출력, 들어오는 힘과 나가는 힘을 비교해 보면 나가는 힘이 더 작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생각해 보았습니까? 하나님께서 왜 세상에 상대적인 사랑, 즉 주체와 대상의 관계를 맺게 했느냐? 하나님은 우리 인간에게 사랑을 주십니다. 그 사랑은 여러분의 개체 머무는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 인간을 거쳐 오는 동안 감소됩니다. 들어가는 것이 입력이라면 다시 나오는 것은 출력인데 출력은 언제나 작아집니다. 사랑이 소모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을 어떻게 보강할 것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여기에 또 다른 횡적인 주체와 대상이 필요한 것입니다. 또 다른 주체와 대상이 서로 주고 받음으로써 새로운 것이 보강되고 이것이 횡적으로 맺어짐으로 말미암아 새로이 돌아갈 수 있는 힘으로 바뀔 것이 아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런 힘의 작용이 원칙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과 사람끼리 왜 사랑해야 하느냐? 사랑하지 않고는 하나님의 사랑이 돌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한 점도 돌아가지 못한다는 겁니다. 종적인 사랑 앞에는 주체와 대상의 상대적인 사랑이 있어야 됩니다. 종적인 사랑의 힘이 상대적인 관계에까지 가기 위해서는 새로운 힘이 보강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종적인 사랑은 자극적인 힘을 보강하고 플러스적인 자극을 또다시 저축하는 작용을 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이 그 본래의 자체까지 돌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종횡의 주체와 대상을 위해 종적인 주체와 횡적인 주체가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다고 해서 선한 것이 아닙니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요 1:29)"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마 3:17)"는 말씀과 같이 그렇게 사랑하는 독생자는 사랑을 받으면 다 된 거예요? 아닙니다. 자기가 사랑을 받았으면 사랑을 해야 됩니다. 힘을 보급해 주어야 합니다. 충족하게 줘야 됩니다. 나라에 충족하게 줘야 되고, 세계에 충족하게 줘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통일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으면 충족하게 주어야 합니다. 뜻을 위해 주라는 겁니다. 자기로 말미암아 나라와 세계를 충족시켜 주어야 됩니다. 그러나 좋은 사람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좋은 사람들이 필요한 것입니다. 좋은 사람들이 없어 가지고는 하늘 나라, 하늘 세계를 도저히 이룰 수 없습니다.

좋은 사람은 줄 수 있는 사람입니다. 좋은 사람은 주체를 좋아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둘이 합해져야 합니다. 둘이 합하면 힘이 납니다. 어떤 힘이 나오느냐? 생명의 힘보다 강한 힘이 나옵니다. 그 힘을 둘이서 소모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하늘의 힘에 플러스시켜야 됩니다. 여러분 몸의 세포를 보더라도 세포끼리 서로 주고 받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따로따로 떨어져 나가서 어떻게 열매를 맺느냐? 그것은 '나'라는 새로운 생명체에 흡수될 수 있는 목적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연결이 잘 되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 기정교회에서는 '오, 하나님이시여! 우리 교회를 어떻게 어떻게 보살펴 주십시오'라고 기도합니다. 이 기도는 나라를 잊어버리고, 세계를 잊어버리고, 하늘땅을 잊어버리고 자기들의 교회를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런 교회는 교회시대가 지나가게 되면 망하게 됩니다. 민족시대에 들어가 있는데 교회에 대해 기도하면 하나님은 오히려 후퇴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지 않겠어요? 집안에서 무슨 좋은 잔치를 벌일 때도 그 집안의 법도를 세우기 위해서는 어른을 중심삼고 잔치를 벌입니다. 이렇듯 한 가정의 가법은 어른을 중심삼고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 어른은 누구냐? 어른 가운데서도 할아버지가 있으면 할아버지, 증조 할아버지가 있으면 증조 할아버지입니다. 그 증조 할아버지가 노망을 했더라도 법도의 중심은 증조 할아버지입니다. 비록 말을 못 하고 명령을 못 하더라도 먹을 것이 생기고 좋은 일이 생기면 먼저 그분께 통고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것은 왜 그러느냐? 종적인 중심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 할아버지가 종적 기준이라는 것입니다. 모든 자연의 좋고 나쁜 것은 종적 관계를 거치고야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조상을 몰라보면 망한다는 말이 일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횡적인 것만 가지고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떠돌이와 같습니다. 이것은 어디를 가나 공식으로 통합니다. 지금까지의 공식을 보더라도 종횡의 관계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주체와 대상의 관계를 떠나서 이루어진 공식은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표준해 가지고 공직이 이루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