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하고 양심적으로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36권 PDF전문보기

솔직하고 양심적으로

여러분은 흔히 나는 양심의 가책을 안 받는다고 말합니다. 양심적으로 살면 되지 않느냐고 하지만, 그 양심의 한계가 어디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양심적으로 살아야 할 개인권이 있고, 가정권이 있고, 종족권이 있고, 더 나아가서는 민족권, 국가권, 세계권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세계를 그리워하고, 하늘땅을 하나 만들기 위해 그리워하는 양심권을 중심삼고 살았다고 할 때는 당당한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이 도의적인 면에서 치우치지 않고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 가운데 빠지지 않는 양심을 가지고 살아왔다고 해도 그런 양심 가지고 통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내가 어떠한 신념을 가지고 산다 할 때, 그 신념이 세계를 넘어 유일의 세계를 보장할 수 있는 신념이냐, 절대자가 공인할 수 있는 신념이냐, 그런 생활관, 그런 국가관, 그런 세계관을 보장할 수 있는 신념이냐 묻게 될 때, 그렇다고 할수 있다면 괜찮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그 양심 가지고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는 부정을 들고 나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부정해라! 네 자신을 부정해라, 네 가정을 부정해라, 네가 살고 있는 사회를 부정하고 국가를 부정해라, 더 나아가서는 세계까지 부정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모든 것을 틀림없이 부정했다고 할 수 있는 결정적인 이념을 가지고 있어야 됩니다. 그 이념을 위해서는 천번 만번 죽더라도 응당히 갈 수 있는 사상적인 배경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의 때는 어떤 때냐, 개인을 복귀하는 때입니다. 사람은 직고하게 되어 있습니다. 죄를 지은 사람은 잠을 잘 때 꿈 가운데서라도 말을 하는 것입니다. 순전한 양심의 반응은 말로써 드러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말을 할 때도 그렇잖아요? 무엇을 느꼈는데 그 느낀 것이 옳다 할 때는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 양심의 밑바닥에 가서 부딪히게 될 때는 직고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익이니 좌익이니 하는 말을 쓰는데, 그런 말을 누가 붙였어요? 그것은 직고한 말입니다. 왼편이니 하는 것은 그릇되었다는 말입니다. 양심은 인륜을 통할 수 있는 바탕과 천륜을 통할 수 있는 바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바탕은 진지한 자리에 가게 되면 자체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의의 법도, 즉 하나의 완성된 천륜이 나오게 되면 그 천륜 앞에 모든 것은 나는 이러한 것이라며 자신을 100퍼센트 드러내게 되는 것입니다. 선한 것이면 선한 것으로 100퍼센트 드러내는 것입니다.

여러분, 좌익이니 하는 것을 보십시오. 전부다 기만이요, 위장전술을 쓰고 있습니다. 그들의 전략전술에서 주요한 표제가 무엇이냐 하면 위장전술입니다. 사실을 그렇지 않은데 그런 것처럼 위장한다는 것입니다. 악한 바탕을 분석해 보면 악은 사실은 그렇지 않은데 사실처럼 나타내는 것입니다.

사람은 솔직해야 합니다. 솔직한 사람은 양심적인 사람입니다. 솔직하다는 말은 동기적인 말이요, 양심적이라는 것은 결과를 보고 판정을 내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솔직하다는 것은 양심적이라는 것입니다. 솔직한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자기를 은폐하고 이중인격을 구사하는 사람입니까? 자기 자신을 감추고 대해 주는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런 사람을 본심으로 좋아할 수 있어요?

상하관계를 두고 볼 때에, 올라가는 것은 어려운 것입니다. 산도 올라가는 것은 어렵지요? 그러나 내려가는 것은 쉽습니다. 마찬가지로 영점 맞는 것은 쉽습니다. 누구나 영점은 맞을 수 있습니다. 영점 맞기로 한다면 전부 다 1등을 차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백점을 기준으로 하면 전부 1등할 수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악한 사람은 전부 지옥 밑창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여러분들이 생각해야 할 아주 심각한 문제입니다.

여러분이 기도할 때도 그렇습니다. 기도를 할 때 어느 경지에서 기도하느냐? 지금 여러분이 살고 있는 세상은 여기입니다. (판서하심) 그러면 어디에서 기도하느냐? (칠판을 가르키시며) 여기쯤에서 기도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또한 여기쯤 들어와서 기도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요, 이곳을 지나 가지고 몸과 마음을 갖추어서 기도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여기는 시간권을 초월한 곳이요, 여기는 시간권에 막혀 있는 곳입니다. 몸과 마음이 하나되어 시간권을 초월한 경지에 들어가게 되면, 나자 하나님이요 하나님이자 나라는 입장이 되는 것입니다. 앞뒷집과 같은 것입니다. 거리가 멀지 않은 위아래 관계에 있다는 것입니다. 위아래의 경계선을 넘어 내적으로 잡으면 잡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