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고 계셔야 하는 하나님인데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36권 PDF전문보기

웃고 계셔야 하는 하나님인데

그러면 순수한 울음은 어떠한 것이냐? 세포와 모든 신경기관이 일치되는 자리에서의 울음이 순수한 울음입니다. 일치되었다는 것은 충만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울음에는 기쁨으로서 충만될 수 있는 인연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또 기쁨을 느끼면 그 기쁨으로 충만할 것이 아니라 기쁨을 자극시킬 수 있는 슬픔도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항상 기쁨만을 자극시켜 주면 나중에는 기쁨을 못 느끼게 됩니다. 기쁨이 있는 반면 그 기쁨을 자극시킬 수 있는 슬픈 일면도 내재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슬픈 일면이 빠르게 이동됨으로 말미암아 우리 의식기관으로는 잘 느끼지 못하지만 절대적인 선자체 앞에, 기쁨 앞에 있어서는 슬픈 일면은 넘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빛이 있으면 어두움이 있고, 높은 곳이 있으면 낮은 곳이 있는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기쁨만을 느낄 수 있는 경지는 기쁜 경지가 아닙니다. 그런 경지가 방향을 바꿔 가지고 반대의 현상이 될 때에는 슬픔을 느끼는 것입니다.

웃는 모양은 우는 모양과 비슷합니다. 여러분, 웃는 모양과 우는 모양에는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생각해 보세요. 어떤 사람은 웃는 모양이 꼭 우는 것 같습니다. 얼굴 변화를 보면 웃을 때도 눈이 작아지고 얼굴에 주름살이 잡히고, 울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은 웃을 때는 공적인 것을 드러내는 것이요, 울 때는 사적인 것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웃을 때에는 공적인 것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옛말에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웃는 사람에게 나쁘게 하면 벌 받는다는 말이요, 웃음을 반대하는 사람은 용서를 못 받는다는 뜻입니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 것은 바로 그런 노릇을 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웃는 것은 무한히 공적인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웃고 계실 것이냐, 울고 계실 것이냐 하는 것을 생각해 볼 때, 하나님은 공적인 분이기 때문에 울고 계셔서는 안 됩니다. 웃고 계셔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언제나 입을 벌리고 웃고 계시는 것은 아닙니다. 충만한 웃음을 웃고 계셔야 하는데, 까딱하면 폭소가 벌어질 것이요, 까딱하면 폭소의 반대되는 폭비(爆悲)가 벌어질 것입니다. 그러한 분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슬픈 면을 알게 되면 그 슬픔 앞에서는 내 슬픔은 사라지기 때문에 기쁨이 나오는 것입니다. 슬픔이 지나면 기쁨이 오는 것입니다. 은혜의 자리도 그러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개할 때는 눈물 콧물을 흘리고, 창자가 끊어지고 숨이 끊어지는 듯한 경지까지 들어가야 됩니다. 이렇게 한바탕 울고 나면 기쁨이 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냐? 기쁨에 충만해 계시는 반면, 무한한 슬픔이 폭발되어 나올 수 있는, 안팎으로 두루 충만함을 갖춘 분입니다. 그래서 그 슬픈 일면을 찾아 들어가 끝에 가게 되면 기쁨으로 화하는 것입니다. 또 기쁜 일면을 찾아 들어가게 되면 슬픔의 경계선이 점차 드러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차되어 하나를 이루고 만족을 느낄 때 폭발적인 만족을 느낄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여러분, 뜨거운 것과 찬 것이 부딪치게 되면 어떻습니까? 폭발되지요? 그렇지요? 그러나 뜨거운 것끼리 부딪치면 폭발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조화를 이루며 형성되어 있는 절대적인 주체가 하나님이심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사람들은 친구를 원할 때 눈물이 있는 친구를 원합니다. 그렇다고 하루 종일 울고, 찔찔 짜는 그런 친구를 원하는 것은 아닙니다. 눈물이 있는 반면 웃음이 충만한 사람을 원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언제나 찡그린 얼굴을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넘치는 희열을 발견할 수 있어야만 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받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남이 울 때 같이 울어 줄 수 있는 사람이 복 받는 사람입니다. 그런 거예요. 복이라는 것은 영원히 떠나고 싶지 않는 자리에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겠어요?

그 복받는 자리는 어떤 자리냐? 영원히 떠나고 싶지 않은 자리에 복은 찾아오기 때문에 복받을 수 있는 자리는 부자의 관계와 같은 자리일 것입니다. 어떤 부모가 자식이 슬퍼하는 데 자기와는 관계없다고 하겠습니까? 아무리 그렇게 다짐하여도 다짐하는 그 의식을 넘어서 먼저 눈물이 앞서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것이 부모의 심정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