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통일교회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37권 PDF전문보기

역사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통일교회

통일교회 문선생이 하는 일을 볼 때, 거국적인 일을 하기 때문에 전체가 한꺼번에 일을 하는데, 그런 일을 할 때는 한 순간과 관계가 없습니다. 멀고 먼 근원이 있기 때문입니다.

한강의 기원은 태백산맥의 어떤 한 곳에서부터 시작합니다. 거기서 흘러 나오는 물방울은 천번 만번 곡절의 과정을 거쳐 나옵니다. 그 물방울은 여러 계통을 통해 나오지만 주류는 하나입니다. 아무리 한강이 길고 수많은 지류로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거기에는 하나의 주류가 있을 것입니다. 그것의 출발이 나무 뿌리가 될지 풀포기가 될지 모르지만 주류는 하나입니다. 둘이 있을 수 없습니다.

한강의 주류는 풀뿌리에 맺힌 물방울이라든가 혹은 한 방울도 못 되는 한점의 습기로부터 시작했을 것입니다. 습기가 모여 한 방울의 물을 이루어 흐르기 시작하는 것은 역사시대의 진리와 같고 주체와 같습니다. 이것이 없이는 아무리 큰 한강도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근원이 희미한 것은 존재가치가 없다는 것입니다. 한강도 시작과 주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의 물방울이지만 주류를 이루어 대해로 나갈 때 그것이 얼마나 영광이겠습니까? 그 물방울이 서해바다로 들어가게 될 때 주류를 이루어 가지고 선두로 들어가면 한강의 골수가 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비가 올 때 조그만 회초리로 마당 바닥을 싹 긁어 놓으면 조그만 물줄기가 생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부터 물줄기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러한 물방울이 하나의 줄기를 이루어 주류의 행로를 거쳐서 바다로 들어가는 길을 안내했다면 그 물방울은 그 강을 창조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흐름에 있어서 미미하고 가치가 없고 자격이 없게 보이겠지만, 그 물의 흐름이 역사적인 대강(大江)의 운명을 판결하는 사명을 짊어질지 누가 압니까?

내가 2월 말경에 대관령 고개를 올라가는데 정상도 아닌 고개가 왜 그리 높은지, 차를 타고 달리는데 자꾸자꾸 높이 올라가는 것입니다. 대관령 고개에 막상 올라가 보니 이것이 높은 고개인지 저것이 높은 고개인지, 높은 고개가 어디인지 몰랐습니다. 이쪽이 높은 고개라고 가 보면 저쪽이 더 높은 고개 같고, 저쪽이 높은 고개라고 가 보면 이 쪽이 더 높은 고개 같았습니다. 이것이 높은 고개 같고 저것이 높은 고개 같아서 어느 것이 높은 고개인지 감이 잘 잡히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렇지만 높은 고개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그 고개는 있습니다.

고개 가운데 제일 높은 곳이 있느냐, 없느냐? 있습니다. 그러면 그게 어디냐? 잘 모르겠어요. 높은 고개라고 그 고개를 들여다보면 들여다볼수록 평평합니다. 그런데 산봉우리에 얼어붙었던 눈이 녹아 가지고 물이 되어 술술 내려오는 것을 보면 하나는 동쪽으로 하나는 서쪽으로 갈라져 흘러갑니다. 산봉우리에서 물이 흘러내리니까 동쪽이 이렇고 서쪽이 이렇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물줄기를 이루는 물 자체는 모르지만 물이 흐르는 것을 보니까 동쪽과 서쪽의 경계선이 확실히 드러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대관령 꼭대기에 서 있어도 그 경계선을 잘 모르는 것입니다. 이 곳인지 저 곳인지 왔다갔다해도 모르는 것입니다. 물을 붓지 않고 이쪽이 서쪽이고 저쪽이 동쪽이다 하고 경계선을 구분할 수 있으면 얼마나 신나겠습니까? 간접적인 방법을 통하고 제3의 여건을 통해 그것을 찾는 것보다 직접적인 방법을 통해서 경계선을 찾는 것이 신나는 일일 것입니다. 이렇게 직접적인 방법을 통해서 경계선을 찾는 것이 통일교회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