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을 놓고 얼마나 심각해 보았는가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46권 PDF전문보기

순간을 놓고 얼마나 심각해 보았는가

이런 관점에서 볼 때에, 현재 입장에 있어서의 책임수행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에 불평불만할 여지가 없는 겁니다. 불평해 가지고 뜻이 이루어질 수 있어요? 성경에 불평해 가지고 뜻이 이루어진다는 말이 있어요?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고 했는데, 그 죽고자 하는 사람이 불평하게 되어 있습니까? '낮고자 하면 높아지고 높고자 하면 낮아진다'고 했습니다. 불평하는 사람은 자기를 중심삼고 불평을 하는 것이니 그건 벌써 망조가 든 겁니다. 망하는 겁니다.

뜻의 길을 가는 사람이 언제 불평을 하고, 비판을 하면서 갈 수 있어요? 그렇게 해서는 못 가는 거라구요. '비판해 가지고 다 분석해 보고, 그 다음에 믿자' 하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 같지만, 천만에요. 신앙은 다른 겁니다. 믿고 행해 가지고 결과를 분석해야 합니다. 그렇게 가는 거라구요. 신념을 가지고 나가야 됩니다.

여러분은 순간에 있어서 한 생명을 중심삼고 얼마만큼 생애에 잊을 수 없는 싸움을 해봤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내가 순간에 있어서 얼마나 땀을 흘려 보았느냐? 삼십 분이면 삼십 분 동안 얼마만큼 나의 정성을 들여 가지고 뼛골의 골수를 짜내듯이 정성을 들여 봤습니까? 얼마나 심각해 봤느냐는 거예요. 여러분이 얼마나 심각해야 되느냐 하면 숨소리에도 놀랄 수 있을 만큼 심각해야 되는 거라구요. 복귀노정은…. 숨소리까지도 듣기 싫어 할 정도로 심각할 때가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순간에 얼마만큼 심중을 털어놓고 그 누구도 헤아릴 수 없는 심각함을 많이 가졌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만물을 대하나 모든 인간을 대하나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삼십 전에 낯선 외지에 나가 어떤 마을에 들어가서 매일같이 그 동네를 바라보며 기가 막혀 가지고 눈물 흘려 보라구요. 비 오는 날에도 빗물인지 눈물인지 모르게 그 동네에 하늘이 임하기를 간절히 바라며 눈물 흘리는 걸음을 걸어 봐요. 절대 밥 안 굶어 죽어요. 그런 사람이 동네에 있으면 그 동네 조상이 협조해 가지고 밥을 갖다 주게 됩니다. 영계에서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의 일대에는 그런 일이 참 많았습니다. 문제는 그겁니다. 일순간이면 일순간, 한 시간이면 한 시간, 그 기간에 얼마만큼 자기의 정성을 들인 양이 많으냐? 사람을 구해주기 위한 간절한 마음이 얼마만큼 사무쳤느냐? 거기서 하늘의 인격을 조성할 수 있는 것이요, 승리의 천국을 소유할 수 있는 소유권을 결정짓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순간적 책임에 있어서 세계를 움직일 수 있는 보다 가치적인 내용을 어떻게 결정짓느냐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문제인 것입니다. 더우기 이 시대라는 것은 한 번밖에 없다구. 알겠어?「예」 한 번밖에 없다는 거라구요.

여기 30살이 넘은 사람 있으면 손들어 봐요. 많구만요. 그 몸이 얼마나 뜻을 위해서 체면이나 사정을 잊어버리고, 자기가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잊어버리고 한 생명을 놓고 얼마나 물고 늘어져 봤느냐는 것입니다. 그래 봤어요? 해봤어요? 전부 다 전도할 때는 그저 보따리를 뒤져 가지고 좋은 것이 있으면 내가 갖고, 동정받겠다는 도둑놈 사촌 같은 마음 가지고….

엄마가 아들딸을 젖 먹여 기르면서 '내가 젖을 먹이는 것은 그 몇 배의 대가를 받아 내기 위해서 먹이는 것이다' 하는 생각을 해요? 더 주지 못해서 애타는 것입니다. 주고 나서도 더 좋은 것을 주지 못해서 눈물짓는 부모의 마음이 영원히 가는 것이라구요. 해주고 나서도 다시 더 좋은 것을 주고 싶은데 없어서 못 주는 애달픈 마음을 가지고 돌아서면서 눈물을 머금을 수 있는 부모는 그 아들을 효자로 만들지 못하는 법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심정의 곳이 복귀의 노정입니다. 그 노정을 떠나 가지고는 복귀는 절대 안 되는 거예요.

선생님은 지금도 그래요. 혼자 앉아 가지고도 모든 사람이 친구입니다. 순간에 있어서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했느냐? 문제는 그겁니다. 내가 어떤 때는, 기도할 때 똑딱하는 순간에 '아버지' 하고 천번 만번 불러보고 싶어서 눈물 흘린 적이 있습니다. 똑딱하는 순간에 '아버지' 한번하고 천번 만번 부르고 싶어서…. 그런 놀음 해 가지고 오늘의 통일교회가 시작된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예」 심각하다는 것입니다. 길거리의 행각 노정에서 뚝배기에 막걸리나 마시면서 콧노래 부르는 놀음이 아니라구요. 심각한 거라구요.

어떠한 기분이냐? 하나님과 내가 각각 한 천리만한 장대를 가지고, 서로 그 끝을 맞추기 위해서 애쓰는 것과 같습니다. 복귀의 길을, 예를 들자면, 한강변의 모래 한 알이 태풍에 휩싸여 숨겨진 것을 단 한번에 그것을 찾아 내는 것 만큼이나 힘든 것입니다. 이것이 복귀의 길입니다. 통일교회가 걸어 나온 길을 보면 그런 이적을 일으킨 것과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이런 길이라는 걸 알지도 못해 가지고 껄렁껄렁해서야 되겠어요?

선생님은 뜻을 품고 손을 얼마나 쥐었는지 손에서 땀이 뚝뚝 떨어졌다는 거예요. 뼛골이 전부 다 한데 뭉쳐지는 듯한…. 그런 것이 쉬울 것 같아요? 하늘과 땅에서 장대 끝을 한번에 맞추는 어려움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이렇게 되었는지, 선생님도 가만히 생각해 보면 꿈만 같습니다. 너무나 생생한 사실입니다. 이러한 실증적인 사실이 지금까지 살아온 생애 가운데 태산 같으니…. 부정할 수 없는 내용들입니다. 그런 터전 위에 통일교회가 섰다는 걸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