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작용은 하나님과 인간을 관계맺게 하는 작용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53권 PDF전문보기

양심작용은 하나님과 인간을 관계맺게 하는 작용

하나님을 작가로 한번 비유해 봅시다. 작가가 작품을 만드는 데에 있어서 자기가 구상한 바와 목적한 바를 중심삼고 만드는데, 만들어진 것이 자기가 구상하고 목적한 것보다도 더 잘 되게 되었을 때에는 그 작품을 영원히 버릴 수 없는 것입니다. 만일 그 작품이 이 땅 위에 하나밖에 없는, 상상할 수 없는 걸작품이 되었다고 하게 될 때는, 자기가 도망을 가든가 이사를 가게 되면 먼저 그것부터 챙겨 가지고 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인간의 본성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자, 하나님이 우주를 만들었다면, 하나님도 대상이 없어 가지고는 좋아할 수도 없고 기뻐할 수도 없고 어떤 작용도 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하나님이 대상을 짓는데 광물을 대상으로 지으려 했겠느냐? 아닙니다. 그것보다도 식물? 식물도 아니요. 동물도 아닌 것입니다. 동물 중에 최고의 자리에 있는 인간은? 그 인간에 대해서는 하나님도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유치원 다니는 아이들에게 절대적인 하나님이 계시다면 그 하나님이 대상의 존재로 누구를 지었겠느냐고 물어 보더라도 두말할 것 없이 그것은 사람이라고 답할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걸작품으로 사람을 만들었다면 주인을 몰라보는 사람으로 만들 수 없다는 거예요. 여러분이 작가라면, 자신이 만든 작품에게 '얘야, 저기 좀 갔다 와' 하면 '예!' 하고 갔다 오고, 좋은 것을 보고 같이 웃자고 하면 웃는 그런 작품을 만들어 놓았다면 얼마나 자랑하고 싶겠어 요? 그렇기에 하나님이 하나의 걸작품을 만들 때에, 말이나 감정을 모두 통할 수 있게끔 만들고 싶었을 것임이 틀림없을 거라구요.

그것은 자동적으로 하나님이 바라는 목적과 일치될 수 있고, 언제나 하나님과 같이 있기를 바라게끔 아니 만들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절대자가 우리 인간을 만들었다면 인간의 목적과 절대자의 목적이 엇갈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절대자인 높은 그분에게 올라가고 절대자인 높은 그분은 인간에게 내려와 가지고 일치될 수 있는 방향이 없어 가지고는, 즉 인간이 절대자인 그분과 일치될 수 있는 방향이 없어 가지고는 우리를 지은 창조주와 우리 자체들의 목적이 일치될 수 있는 길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작용을 하는 것이 뭐냐 하면 양심작용이예요.

인간의 마음은 누구나 최고의 것을 내 것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여러분, 남자나 여자나 세계의 대통령 한번 되어 보고 싶지 않은 사람 있어요? 다 있다는 거라구요.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이나 누구를 막론하고 최고의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하는 겁니다. 여자들은 세계에서 제일가는 남자를 원합니다. 그러나 여자가 그 남자를 취했지만 그 남자보다도 더 높은 분이 있으면 그분도 자기 것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거예요. 남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볼 때, 사람들은 역사적으로 유명한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을 그대로 두지 않고 자기 것으로 만들고 싶어합니다. 그 사람을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하더라도, 만일 절대자가 있다면 그 사람을 내놓고 절대자를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있는 것을 알게 되면 그 하나님을 여러분의 것으로 만들고 싶어요, 안 만들고 싶어요? 그런 마음이 없다면 여러분은 그분과 상봉할 수 없습니다. 그분이 있으면 틀림없이 자기 것으로 만들고 싶어할 것입니다. 전부 다 그렇게 하게끔 되어 있다는 거예요. 그것은 자고로 인간이 생겨난 그날부터 누구나 다 바라는 것입니다.

만일에 하나님이 인간을 걸작품으로 지었다면, 걸작품인 그 존재가 하나님에게 점령하겠다 하고, 하나님을 자기 것으로 만들겠다고 하면, 하나님이 그것을 싫어하겠어요? 인간의 최고의 권위가 뭐냐 하면, 하나님을 내 것으로 만들고 세계를 내 것으로 만들어 최대의 권한을 행사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고 싶어하는 것이 인간의 욕망입니다. 이 욕망이 없어 가지고는 절대적인 하나님의 권한과 절대적인 하나님을 소유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욕망은 어린 시대나 청년시대나 장년시대나 노년시대나 마찬가지로 우리의 마음 속에서 작용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욕망을 가진 마음이 하나님을 소유하고도 남을 수 있는 크기가 되었느냐, 하나님을 소유하고도 남을 수 있는 존재가 되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도 전부 다 소유…. 하나님을 내 것으로 만드는 데 있어서 그 하나님을 영원한 내 하나님으로 만들려면, 하나님을 전부 다 소유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내 것으로 만들었다 하더라도 한 가지를 놓쳐 버리면 하나님을 놓치는 거예요. 다시 말하면, 하나님 속에 숨어 있는 하나의 사랑, 그 비밀의 사랑을 점령하기 전에는 하나님을 영원한 나의 하나님으로 만들 수 없는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했다면 내 욕망은 어떻게 되느냐? 아무것도 바랄 것이 없다는 거예요. 여기가 인간의 욕망이 비로소 '아, 이제 내가 쉬어야 되겠다'고 할 수 있는 안착점, 즉 종착점이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절대적인 하나님과 인간이 서로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작용하는 힘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없어 가지고는 그 목적을 연결시킬 수 없습니다. 우리의 양심작용을 볼 때, 앞에서 말했듯이 주체와 대상이 없어 가지고는 작용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주체되는 그 무엇이 있어야 된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양심이 없다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누구나 다 갖고 있습니다. 양심은 밤이나 낮이나 나를 대하여 옳은 길로, 공의의 길로, 선의 길로 가라고 재촉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손해나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체도 플러스되고 상대도 플러스될 수 있는 입장에서 작용해야 된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