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에서의 신에 대한 체휼이 우리의 생명의 요인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58권 PDF전문보기

생활 속에서의 신에 대한 체휼이 우리의 생명의 요인

여러분, '사랑' 하게 되면 이것은 막연한 말입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혼자, 말로서는 이해가 안 되는 것입니다. 부모의 사랑이라는 말을 아무리 설명해 보았자 부모를 갖지 못한 사람에게는 그것이 도달할 수 없는 경지인 것입니다. 혹은, 부부의 사랑을 아무리 설명해 보아야 혼자 살고 있는 사람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또, 부모의 사랑이 어떻게 크다고 해도 자녀를 낳아 가지고 자녀를 길러 보지 않은, 이러한 체험을 갖지 못한 사람에게는 그것은 도달할 수 없는 경지인 것입니다.

결국은 자기가 느낄 수 있는 주체나 대상권내에 있어서, 그와 나와의 행동적인 일치점을 갖출 수 있는 데 있어서, 그가 좋아하는 것을 내가 좋아할 수 있고 그의 바램이 내 바램이 될 수 있고 그의 일체가 내 일체로 연결될 수 있는 그 자리에 있어서 그 상대를 대한 사랑의 느낌을 느끼는 것이 우리의 일상생활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 '하나님' 하게 되면 막연하다 이겁니다. 그 막연한 하나님이 나와 더불어 어떠한 환경에서 일치점을 느끼느냐, 출발점을 제시할 것이냐?이것이 가장 중요하다는것입니다.

여러분이 기도시간에만 그러한 인연을 맺을 수 있다고 하게 되면, 그 기도시간 이상의 환경을 내 생활권내에 연결시킬 수 있는 노력을 하지 않고 신과 동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체휼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인간을 보게 될 때, 하나님하면 높은 감을 느끼지만, 우리 아버지와 나, 이런 관계…. 하나님은 어떠한 하나님이냐 하면 아버지라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자식이다. 나는 아들이다. 아들 인데 둘도 없는 아들이다. 하나님은 그 아들의 아버지인데 세계의 수많은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최고의 아버지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내정적인 면을, 여러분들이 신앙생활에서 어떻게 내심으로 그 폭을 넓히고 그 권을 넓힐 수 있느냐 하는 문제, 그것이 생각뿐만이 아니라 실천생활에 있어서, 실천환경에 있어서, 그것을 어떻게 적응시키느냐 하는 문제를 다루게 될 때는, '내가 사랑하는 아버님이 바라는 심정적 요구, 즉 사랑의 아버지께서 요구하고 있는 것이 이것이 아니냐,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렇게 실천해야 한다'고 해야 되는 것입니다. 실천하는 그 하루의 생활도, 혹은 한달의 생활도 물론이지만 일생의 생활을 그렇게 보고, 자기 혼자 보고하고 자기 혼자 느낄 수 있는 생활을 하는 여기에서 비로소 체휼이라는 것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막연히 기도나 할 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대개 신령한 체험이 있는 사람들의 폐단이 무엇이냐?기도라든가 집회할 때는 그런 것을 느끼지만 생활면에 있어서의 동화된 체휼권, 또는 동화시킬 수 있는 체휼권에 대해서는 망각하는 것을 우리는 왕왕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내가 기도를 하나 안 하나 그 환경에 있어서 하늘이 같이 역사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자아를 어떻게 확인하고 확정짓느냐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에 대한 체휼이 우리의 생명의 요인이 된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