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부정에서 완전한 것이 출발한다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60권 PDF전문보기

완전부정에서 완전한 것이 출발한다

타락된 인간 앞에 긍정적인 요인이 남아 있을 때는 타락성을 지니고 있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완전 분해해야 합니다. 그 형태를 갖춘 그 요소를 그냥 연결시키는 자리에는 타락성 요인이 남아 있기 때문에, 그것은 완전분해가 아니지 않느냐. 완전부정이 아니지 않느냐? 완전분해라는 것은 완전부정이 아니냐는 겁니다. 그게 완전부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다운 인간 본연의 이상적인 소원성취의 길은 타락한 인간에게 있는 긍정적인 요인을 가지고는 있을 수 없다, 이렇게까지 결론을 짓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된 신이 종교를 통해서 그의 섭리의 목적을 추구하고 계시다면, 그 신이 주장하는 행로, 그 노정이라는 것이 긍정이 아니라 절대 부정입니다. 절대 부정으로 출발한 기준이 나오지 않고는 타락한 인간 앞에 절대자의 상대이념을 성취시킬 수 있는 길은 있을 수 없다는 결론이 지어집니다. 그래서 '종교의 길은 반대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반대.

여러분이 지금까지 살아 나온 습관적인, 정서적인 문제를 중심삼아 가지고 내 어머니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이 통할 수 있느냐? 이게 문제라구요. 그게 통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아요. 그러나 통할 수 없다는 겁니다. 혹은 남녀끼리 서로 사랑하는 것이 통할 수 있느냐? '그거 그래야지' 하겠지만, 이상적인 관점에서 볼 때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형제끼리 서로 사랑하는 것이 그냥 통할 수 있느냐?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기서 모든 것이 상충이 벌어집니다. 상충되는 이 운동을 제지할 수 있는 놀음이 오늘날 인류역사 노정에 벌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누구를 중심삼고? 사람을 중심삼는 것이 아니라 신을 중심삼고…. 역사는 그렇게 나오는 것입니다.

역사시대에 많은 종교가 나왔는데, 지금의 결과적인 입장에 있어서는 공헌을 했지만, 그 당대에 있어서 공헌한 종교가 있느냐? 없습니다. 그 당대에 있어서는 상충입니다. 모두가 배치되었고, 모두가 부정적인 입장에서 출발했지만, 역사시대를 지나고 나서 그것이 어떻게 공헌의 결과를 가져왔느냐? 그것은 절대적인 주체자인 하나님의 섭리가 있기 때문에, 그 섭리의 지휘 밑에서 역사는 관련되어 나오기 때문에, 그 경륜권내의 결과를 가져오지 않을 수 없겠기 때문에 비로소 종교는 역사상에 공헌한다는 결론이 내려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이게 행복한 것이냐? 매우 비참한 것입니다. 그건 비참한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살림살이, 우리 인간이 살고 있는 인연적인 제반 여건, 혹은 관계적인 환경, 이것이 행복한 것이냐? 인간이 타락됐다는 것을 공인할 때, 그 환경과 그 인연과 그 관계는 비참한 것입니다. 왜 비참한 것이냐? 하나님 앞에 슬픔을 가해 줄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자식들이 말이예요. 뭐 애기들을 키워 본 사람들은 잘 알 거예요. 어린 애기들을 보면 물건을 갖고 놀기를 참 좋아합니다. 예를 들면 칼 같은 것을 가지고 놀 때, 이걸 놓으라고 하면 이걸 붙들고 안 놓으려고 야단한다는 거예요. 울고불고한다 이겁니다. 그러면 부모는 그걸 그냥놔 둘 수 있느냐? 울어도, 아무리 울어도, 그건 뭐 하루종일 울든지 뭐 며칠을 울더라도 자유를 허락할 수 없습니다. 그럴 때는 매정하게 빼앗아 버려야 된다구요. 눈물을 뭐 몇 대야 흘리고 야단법석이 벌어지더라도 도리어 채찍을 가해 가지고 빼앗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부모의 사랑입니다. 부모가 참다운 사람이라면, 그 어린 아이에게 칼을 줘서 '어서 놀아라' 그럴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러한 비참한 정상(情狀)에 처한 인간이 있다면, 그 자체를 공인해 주고 협조해 주는 것보다도 그것이 죽음의 길이요, 사망의 길이라 할 때는, 그 반대의 길로 때려 몰 것입니다. 그런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역사는 그러한 과정을 거쳐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시대에 있어서 그러한 사명을 짊어진 것이, 우리가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인 사실로 등장한 것이 종교가 아니냐. 종교의 길은 비참한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비참한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긍정적인 요인을 중심삼아 가지고는 타락한 인간이 절대 완전한 것을 추구할 수 없기 때문에, 완전 부정에서부터 완전한 것이 출발할 수 있는 가망성이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