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설적인 길을 밟아 발전해 나온 것이 종교의 길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125권 PDF전문보기

역설적인 길을 밟아 발전해 나온 것이 종교의 길

통일교회 문선생,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이 이렇게 지지리 못살게 고생하고, 어디에 가든지 그저 감옥에 들어가고 그 나라의 주권자와 투쟁해 가지고 언제나 형무소 가지 않으면 법정투쟁하고 있는데, 왜 그래야 돼요? 도대체 하나님이 그렇게 무자비한 하나님이예요? 사랑하기는 커녕, 이게 뭐예요? 어떻게 이것을 논리적으로 순리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게 설명할 수 있느냐? 없다 이거예요.

이것은 역설적이예요. 역설적이야! 이게 역설적이예요. 악한 사탄세계를 기점으로 하여 가지고 순리의 논법을 세우면 하늘은 나오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 나라에 포괄되어 버리고, 그 나라에서 출발하여 그 나라를 종착점으로 해서 그대로 망해 버린다 이거예요. 정의의 길을 가면서 정도를 세워 나가는 하나님은 역설적인 논리 과정을 통해서 필시 타락한 세계를 거쳐가지 않으면 안 될 운명길이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는 거예요. 하나님은 그걸 확실히 알아요. 그러나 오늘날 종교 지도자들은 몰라요.

역설적인 과정을 거치는 데 있어서 가정도 역설적인 대우를 해야 됩니다. 자식도 역설적인 대우를 해야 돼요. 아내도 역설적인 대우를 해야 돼요. 스승도, 나라의 주권자도 역설적인 논법에 일치될 수 있는 과정을 완전히 통과하지 않으면 패스할 길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의 길은 비참이다 하는 결론 위에 서 있다는 거예요.

종교가 핍박받을 때에 발전할 수 있는 길은, 이런 역설적인 논리의 길을 더듬어 가야 할 운명에 있기 때문에 핍박받는 시대에 종교는 발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종교의 길이었더라 하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긍정적 논리에서 출발할 수 있는 종교면 타락한 세계 그 자체에 화합되는 거예요. 부정적인 논리 자체를 중심삼고 부정적인 방향을 갖춰 가지고 부정적인 투쟁의 노정을 거치는 데서만이 소망적인 연장의 길이 확대될 수 있다는 것은 지극히 이론적이라는 거예요. 알싸, 모를 싸? 「알싸」

뭐, 선배가정? 선배가정은 익지 않고 설었다는 뜻에서 선배 가정이지. 이놈의 자식들! 하는 꼬라지를 보라구. 자, 선생님이 가정을 버렸어요? 내 부모를 버렸어요, 안 버렸어요? 물어 보자구요. 더 찾고 다니지! 감옥에서 나와서, 앞으로의 정세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알았던 내가 부모 형제들을 전부 다 살려 주기 위해서 첫번으로 뛰어들어가야 할 것인데도 불구하고, 하늘을 따라가는 무리들을 수습하기 위해 시간을 잃다보니 자기 일족을 학살의 구덩이에 장사하게 만든 내가 되었더라 이거예요.

그게 불효냐? 나는 불효라고 생각지 않아요. 정도를 찾아 나가는 길이기 때문에. 어머니 아버지, 좀 기다리소. 감옥에 찾아온 어머니는 아들을 대해서 진정한 부모의 심정을 가지고, 아들딸의 인연을 가지고 생각하지만 나는 그 어머니 대해서 충고를 했어요. '당신이 나를 김 아무개라는 여자의 아들로서 찾아주면 나는 싫다. 내 앞에서는 그런 눈물을 흘리지 마라. 나는 당신의 아들로서 그릇된 것 같지만, 조금도 그런 사나이가 아니요. 내 어버이 앞에 혹은 형제 앞에, 내 일족 앞에, 이 나라와 이 세계 앞에 부끄러울 수 있는 인간은 안 될 것이다. 당당하고 늠름한 사람이 될 것이다'라고 했다구요. 감옥의 철창이 깨져 나가는 날 내 활로는 세계와 연결될 수 있는 그날이 올 것을 예상하면서 투쟁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처자를 버리고…. 지금도 우리 아들딸을 전부 다 버리고 나온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