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환경을 부정하고 승리해야 본연의 자리에 나아갈 수 있어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127권 PDF전문보기

모든 환경을 부정하고 승리해야 본연의 자리에 나아갈 수 있어

그러면 종교가 가야 할 길은 어떠한 길이냐? 종교의 길은 구원섭리를 따라가는 길입니다. 그러면 그 구원섭리의 최종에 가서 도달해야 할 그 자리는 어디냐? 이 모든 것을 부정하고 승리하는 자리입니다. 그 자리에서만이 본연의 뜻의 자리에 접촉선을 볼 수 있다, 이런 결론이 돼요.

그러면 부정하는 데 있어서 순차는 어떻게 되느냐? 어떻게 부정하느냐? 나로부터 부정해 올라갈 것이냐, 세계로부터 부정해 내려올 것이냐? 오늘날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사람은 욕망을 갖고 있습니다. 소망을 갖고 사는데 나로부터 전진적인, 향진적인 차원을 향해 가지고 그 뜻의 확대권을, 그 소망의 확대권을 요구하는 것이 인간들이 갖고 있는 마음입니다. 이렇게 볼 때 나로부터 부정해서 올라가야 되느냐, 내려가야 되느냐? 이것은 심각한 문제예요.

여기서 보게 될 때에, 나와 하나님편으로 보게 되면 이 중간에 누가 들어가 있느냐? 나라는 차원에서부터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 이 천지라는 차원이 그 사이에 있습니다. 그 사이에 끼어 있는 것은 하나님도 필요 없고, 나도 필요 없습니다. 이것을 초월해서 하나님과 인간이 뜻 앞에 일치될 수 있는 그 자리를 연결시키기 위해서는 이 과정적 요건이 필요 없습니다. 이것을 왕창 제거해 버려야 됩니다.

그러려면 어디서부터 제거해야 되느냐? 내 욕망부터. 이것은 타락할 때에 천사장이 욕망을 가지고 시작했기 때문에 내 욕망부터 제거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에서는 욕심이라든가, 자기주장을 하는 교만이라는 것은 절대 부정적 요인이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뜻의 길을 찾아가려는 사람들은 욕망이라든가, 자기 중심삼은, 자주적인 주장 가지고는 못 갑니다. 오로지 창조이상의 뜻, 창조이상적으로 보는 뜻의 욕망은 가능하고 뜻의 주장은 가능하되, 그외 일체의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보는 겁니다.

그러면 부정하는 데는 어떻게 하느냐? 권한을 두고 보면 개인보다도 가정 권한이 더 큽니다. 가정보다도 종족 권한, 종족보다도 민족, 민족보다도 국가, 국가보다도 세계, 세계보다도 천주가 큽니다. 그러면 과정에 있는 이것을 지배하는 것이 무엇이냐? 그것은 사탄 마귀라는 존재입니다. 그 마귀는 어디에 가 가지고 있으면서 인류의 길을 막고 있느냐 하면, 나를 따라오면서 막고 있지 않습니다. 내 뒤를 따라오면서 막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앞에서 막고 있는 것입니다. 내 앞에서 내가 가야 할 필연적인 길을 막고 있습니다. 그 필연적인 길을 막고 있는 그 기반이 나보다 작은 기반이냐, 큰 기반이냐 할 때, 작은 기반이면 문제가 없지만 큰 기반이다 이거예요. 비례적으로 큰 기반을 가지고 나를 막고 있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 사탄 마귀를 부정하고, 이 환경 전체를 부정하는 데는 그냥 그대로 부정되지 않는다 이거예요. 그냥 그대로 내가 부정했다 하는 한마디, 인간들이 무슨 땅에 대한 매매라든가, 주관할 수 있는 모든 권한을 이양하는 데 있어서 '너와 내가 상의해 가지고 너도 그렇고 나도 그렇다' 해서 사인하는 거와 같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내가 이것을 거쳐 나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투쟁이라는 개념이 성립됩니다. 이것을 굴복시켜 가지고 이러한 사탄권한을 제거해야지, 굴복시키지 않고 그냥 그대로 환경의 여건에 순응해서는 뜻의 길 앞에서 나는 전진적인 노정을 찾을 수 없습니다. 전진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큰 무대에 서 가지고 내 길을 가로막고 있으니 이것을 굴복시키면서 나아가야 됩니다.

그런 것을 보게 될 때,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개인이 가는 길 앞에 큰 무대에, 큰 차원에 있어서 가로막는 사탄은 어디를 지키고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내 개인이 가는 길 앞에서, 가정이라는 기반 밑에서 사탄은 나를 가로막고 있습니다. 내가 가는 길 앞에 있어서 제일 문제점이 될 수 있는 터전이 어디냐? 사탄이 나의 갈 길을, 모든 것을 방해할 수 있는 그 접촉점이 어디냐? 가정이라는 곳입니다.

이렇게 생각하게 될 때,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신 것과 마찬가지로 '네 집안 식구가 원수다' 하는 겁니다. 원수가 어디에 있느냐 하면, 저 세계 귀퉁이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가정의 길을 통하고, 종족, 민족, 국가, 세계, 천주를 통해 가지고 하나님 앞에 가는 것이 인간이 가야 할 필연적인 노정인데 그 길을 가는 출발의 첫 관문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 사탄입니다. 그러면 이 관문이 무엇이냐? 가정이다 하는 걸 여러분이 알아야 돼요.

오늘날 타락권 내에서 사는 우리 자신들이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내가 지금 사랑한다는 남편이 누구냐? 내가 사랑한다는 자녀가 누구냐? 이거 문제가 심각하다구요. 이들은 사탄의 일선에 무기로 등장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러한 역사적인 노정을 앞에 두고 섭리의 뜻의 완성의 길을 추구하는, 뜻을 따라가는 개인 개인에 대해서 경고한 것이 무엇이냐 하면, '네 집안에 원수가 있다' 하는 겁니다. 그다음에는 여기에서 '누구보다도 나를 더 사랑하라'는 겁니다.

타락했을망정 현세의 생활권 내의 우리 자체들을 중심삼고 볼 때 그것은 일대 모순적인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것은 이 사회에서 용납할 수 없는 말이다 이거예요. 그것은 사회의 근본을 뒤집어 버렸어요. 오늘날 이 타락세계에 있어서 가정이라 함은 국가 형성의 기초가 되는 겁니다. 이 모든 것을 파탄시킬 수 있는 혁명적인 언사였다는 사실을 우리는 확실히 알아야 되겠어요. 그래서 가정을 처리하고 나가야 돼요.

자, 그러면 '사탄의 이 환경을 전부 다 그냥 없앴다. 다 없애 버렸다' 이렇게 말로 통하지 않는다구요. 말로는 안 통한다 이거예요. 사실적 과정에 있어서 하나하나, 차근차근 뜻의 노정의 길을 가야 되는, 전진적인 단계에서 정리해 나가야 되는 길이다 하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이것이 우리 통일교회의 술어로 말하면 복귀섭리의 필연적인 노정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피해 가면 얼마나 좋으냐? 못 피해 간다 이거예요. 이건 심각한 문제예요.

그래서 예수님 같은 양반들이 제일 치중한 곳이 어디냐? 가정 해결에 지극히…. 이것을 완전히 청산짓고…. 여기에 있는 기반이 사탄무대가 되어 있어 가지고 내가 갈 전반적인 길을 막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걸? 객관적인 삼자 입장이 아니라, 직접적인 주체자의 입장에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가로막고 있는 사탄이 얼마나 교활하냐? 역사시대의 인간 타락 이후 지금까지 하나님을 꼼짝못하게 주관해 나오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백방으로 막고, 뜻의 연장을 거듭시켜 나오는 교활하고도 지혜로운 그러한 자가 사탄 마귀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