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랑을 찾아가려면 거짓된 사랑의 여건을 넘어서야 돼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144권 PDF전문보기

참사랑을 찾아가려면 거짓된 사랑의 여건을 넘어서야 돼

그래서 예수는 만민을 대해 선포하기를 무슨 말을 했느냐? '누구보다도 나를 더 사랑하라' 했습니다. 그 누구라는 권이 타락한 세상을 말하는 거예요. 타락한 세상권에 있어서는 타락한 사랑의 기준 아래에 있다는 거지요. 그 기준을 넘어서야 돼요. 그 기준을 넘어서야 된다구요. 그러니까 집약해 보면 가정을 중심삼은 자기 어머니 아버지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해야 되고, 본연의 부모 되는 메시아를 더 위해야 되고, 자기 아내나 남편보다도 예수님을 더 사랑해야 됩니다. 그건 뭐냐? 탕감복귀원칙에 있어서 사탄편 사랑을 능가할 수 있는 하늘의 사랑이 비로소 시작될 수 있는 기준을 세워 가지고 선포했다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 있는 '네 집안 식구가 원수라'는 말은 오늘날 역설적인 논리입니다. 종교를 모르는 사람들이 있으면 정상적인 역사세계라고 보겠지만 이런 것은 역설적인 논리입니다. 파탄적인 논리예요. 사탄세계의 대중을 두고 보면 공인할 수 없는 부정적인 논리를 세워 나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귀의 길은 정상적인 논리를 통하는 길이 아니라는 거지요. 이것은 부정적 논리요, 파괴적 논리요, 그다음에는 긍정할 수 없는 논리입니다. 부정하는 기준이예요.

그 부정 기준이 뭐냐? 자기 가정입니다. 하늘길을 가려니까 이것이 언제나 원수라구요. 누가 원수예요? 원수를 찾아가는 데는 제일 가까운 사람들이 원수예요. 그러니 자기 어머니가 반대하고 다니고 남편이 반대하고 다니고 자식이 반대해요. 이 3단계의 반대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3단계 중 어느 하나도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어느 하나도 찾을 수 없는 거라구요.

왜 그러냐? 우리가 찾아가는 본연의 세계라는 것은 타락권 사랑의 세계가 아니예요. 타락권 사랑 이상의 세계를 찾아 나가느니만큼 오늘 우리가 속해 있는 이 윤리적 가정기반이라는 것―부모 혹은 부부, 자녀가 있다면 그 자녀의 기준―은 천적 사랑의 기준에 아무런 외적 인연도 없거니와 상관도 없는 거예요. 사탄과 상관이 있는 것이지 나와는….

나로서부터 시작입니다. 시작하는데 시작의 사랑이 하늘의 사랑을 가지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된 겁니다. 본래 하늘의 사랑은 아담에게서 시작하고 해와에게서 시작해야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 이치로 오늘날 타락한 세계에 있어서 내가 하나님을 찾아가고 사랑의 이상세계를 찾아가기 위해서는 나로부터 사탄세계 이상의 사랑을 갖고 나서야 됩니다.

그러나 역사적인 배후를 중심삼고 '나'라는 사람은 타락권의 인연을 벗어나지 못한 사람이니 타락권 인연을 중심삼고 새로 출발해야 합니다. 그 타락권 이상의 사랑에서 나는 이 인연 내용을 청산해야 합니다. 거기에 남아진 사람 중에 나와 인연된 사람이 있느냐? 자식이 되어도 거기에서 보면 내 사랑권 내에서 되어진 것이 아니예요. 여기에 종족적 혹은 국가 자체도 나의 사랑권에 편성된 국가요,이 세계도 내 사랑의 인연을 벗어날 수 없는 세계권인 것입니다. 이것을 벗어날 수 있는 내가 못 됐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이런 사랑의 첫출발을 갖고 새로운 신앙을 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전부 다 부딪치는 겁니다. 부딪치지 않고는 생겨날 수 없어요. 그렇지 않아요? 빚을 진 다음에는 탕감이라도 받아 가지고 빚을 청산짓지 않으면 어디 못 가는 거예요. 다른 동네로 도망가게 되고, 피해서 도망 다니는 녀석으로 취급을 받는 거라구요. 사탄이 주장할 수 있는 역사적 내적인 먼 인연과 혹은 가까운 인연이 여기에 엉클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가 가는 길에는 탕감복귀라는 원칙이 필요해요. 참사랑의 자리를 찾아가려면 거짓된 사랑의 모든 여건을 넘어서야 됩니다. 참이라는 것은 최후의 승리의 권한을 가졌다구요. 그러니까 아무리 그 단계의 높은 무엇이 있어서 부정적인 측면이 있더라도 그 부정적인 모든 요인들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 부정적인 모든 요인들을 극복해서 자체에게 피해를 주지 않았다는 거예요. 그 자리는 뭐냐? 돈이 피해를 주면 자리가 남아요. 지식에 대한 피해를 받았으면 몰지각한 면에 후회가 남아요. 흠이 안 남을 수 있는 것은 용서하는 사랑밖에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은 용서와 사랑을 들고 나온다는 거지요. 이런 원리 얘기를 하려면 한이 없지요.

그렇기 때문에 타락하지 않은 아담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이상형을 향해서 본래부터, 태어난 그 시간에서부터 전진해 나갔어야 할 것이었습니다. 그런 자리를 인간은 잃어버렸기 때문에 오늘날 사악한 타락권 내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곳에 내가 다시 태어나 살고 싶지만, '내 자신이 하나님의 이상적 사랑을 찾아갈 수 있다'고 나면서부터 주장할 수 있는 그 자리를 가져야 하지만, 나면서부터 주장할 수 있는 그 내적 배후가, 내 자신이 태어나기를 참된 부모로부터 태어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게 문제입니다.

역사성이 있다 이겁니다. 역사성의 내용을 갖고 사탄이 말하기를 '네가 나를 이기려면 역사적인 내적 인연을 넘어가야 된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담 개인이 타락했지만 아담 개인이 타락한 것이 아니라구요. 해와도 타락했고, 한 사람 두 사람이 타락해서 이것이 남성과 여성을 연결시키게 되어 종족 편성으로부터 민족 국가 형성을 지나 세계 인류까지 등장한 것입니다.

이걸 개체로 따져 보게 되면, 남자는 개인 탕감해야 되고 가정 탕감해야 되고 종족 탕감해야 되고 민족 탕감해야 되고 국가 탕감해야 되고, 세계 탕감을 해야 됩니다. 그렇게 해서 이기지 않고는 사탄의 참소권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럴 때에는 아무리 하나님의 사랑이상을 찾아다녔댔자 하나님도 인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알아듣겠나, 못 알아듣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