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마음이 하나된 행복의 안식처에 하나님이 임재해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149권 PDF전문보기

몸 마음이 하나된 행복의 안식처에 하나님이 임재해

그러면 아담이 완성하고자 하는 것이 뭐냐? 아담이 성숙되어 가지고 완성했다는 그 기준을 무엇으로 세우느냐 할 때, 그것 역시 사랑의 표상적 기준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숙하면 사랑의 길을 찾아가는 데에 있어서 사랑의 대상을 필요로 하게 되기 때문에 남녀에게 사춘기 시대가 오는 것입니다. 그 사춘기 시대에는 자기도 모르는 사랑의 광활한 무대에 끌려 다니면서 그 무엇인가 행복의 안식처를 찾아 헤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인간이 같이 만나고 같이 있을 수 있는 자리는 어디냐? 몸과 마음을 중심삼고 하나님과 인간이 만날 수 있느냐? 마음이 쑥 올라가 가지고 하나님이 계시는 곳에 가서 만날 것이냐?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 가운데 하나님이 계시게 되어 있다 이거예요. 몸과 마음이 사랑을 중심삼고 완전히 무르익어 성숙되어 가지고 아니 화합할래야 아니 할 수 없게끔 마음도 부풀고, 몸도 부풀어 있는 그 가운데에 하나님이 임하게 됩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임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인간은 하나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과 인간이 실제로 하나될 수 있는 자리는 어디냐? 정말 하나될 수 있는 자리는 어디냐? 하나님이 우리 마음 가운데 들어왔지마는, 그 하나님의 마음이 우리 몸뚱이를 사랑해요? 물론 사랑으로 품고 있지요. 그것은 우리 개인도 마찬가지이고, 여자나 남자나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마음 가운데 들어와 가지고 하나될 때 우리의 몸과 마음은 영원히 같이 살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사는 것인데 언제 얼마만큼 커야 되느냐? 얼마만큼 커야 되느냐 이거예요. 하나님이 사랑하실 수 있는, 하나님이 사랑하시기에 흡족할 수 있는 그때까지 커야 되는 것입니다. 그때까지 아담 해와는 기다려야 되는 겁니다. 이것을 소위 성숙기라고 보는 거예요. 우리 통일교회에서 성숙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성성상으로 계시어 아담의 몸 가운데 임할 수도 있고, 해와의 몸 가운데도 임할 수 있습니다. 만약에 하나님이 한분으로 계셔서 아담 가운데에만 들어간다면 해와는 얼마나 적적할까요? 또, 해와 가운데에만 들어간다면 아담은 얼마나 적적할까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한 분이지마는 이성성상의 주체이시므로 갈라져 가지고 아담 해와를 품을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 원리의 정분합(正分合)작용의 논리가 나오는 거예요.

그러면 몸과 마음이 언제 하나님을 만나느냐? 물론 우리가 어려서 자랄 때에는 하나님을 몰랐지마는, 우리 본연의 마음 가운데에 하나님이 계셨다는 것입니다.

모든 만물은 전부 다 정신이 있고 체(體)가 있다는 거예요. 우리가 이걸 알지요? 모든 것이 내적인 형 외적인 형, 이성성상이라는 성상과 형상이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느냐 하면 모든 존재는 안팎이 공존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안팎이 공존하는 거기에서 완전한 물건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러한 완전한 물건이란 어떤 것이냐? 우리가 바라는 소원 앞에 완전히 하나되어 마음에 꼭 맞는 것이 있게 될 때, 이것은 나에게 꼭 필요한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그것이 개인에게 있어서 완전한 물건이 되는 거예요.

그러면 아담과 해와가 언제 하나님이 필요로 하는 완전한 사랑의 도구로서 하나님의 마음에 꼭 맞게 될 수 있느냐 이겁니다. 그건 아무때나 꼭 맞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발전하는 과정에 있어서 그 어떠한 기준이 있어야 합니다. 그 기준은 모든 끝과 시작이 전부 다 같이 돌더라도 지장이 없고, 같이 세우더라도 균형이 잡혀 있어야 돼요.

여기 하나의 축이 있어 가지고 그 좌우에 날개가 있다면 그 날개는 아무데 있더라도 불안하지 않다는 거예요, 아무데 있더라도. 좌우가 같이할 수 있는 자리라야 합니다. 그래서 그 무엇보다도 축이 좌우를 지탱시켜 줄 수 있고, 그것을 지지해 줄 수 있으며 붙들어 줄 수 있는 힘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 몸 마음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몸과 마음이 둘이 하나되어서 좋아할 수 있는 …. 좋아한다는 것은 운동을 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건 평면적인 운동이 아니라 입체적인 구형운동을 하는 겁니다. 각양각색의 변화적 운동을 일으키면서 안팎이 모두 맞아떨어지는 거예요.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이 이성성상이기 때문에 아담 가운데 해와 가운데 임재할 수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