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작용의 성향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252권 PDF전문보기

양심작용의 성향

그러면 여러분의 양심과 몸뚱이를 놓고 보자구요. 양심이 있습니다. 양심이 없는 사람은 손 들어 봐요. 양심을 봤어요? 만져 봤어요? 그거 어떻게 알아요? 몸과 마음의 싸움을 해결하지 못한 자리에 있어서 그걸 느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되지 못한 상황에서 그걸 느끼려고 하니까 불확실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문제가 크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좋은 곳을 향해서 가려고 하는 마음의 작용이 있습니다. 나쁜 곳을 가려는 것이 아니라구요. 그러니까 이것은 선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몸뚱이는 양심이 바라는 대로 절대 안 가려고 그럽니다. 반대예요. 그래서 싸우는 거예요. 두 놈이 싸운다구요.

그런데 지금까지 역사 이래에 역사를 통해서 이 둘이 싸우는 전쟁이 끝나 본 적이 없다구요. 휴전이란 걸 한번 해 봤어요? 그 반대라는 거예요. 지금까지 휴전도 못 해 보고 있다는 거라구요. 이걸 누가 끝내느냐 이거예요. 이것을 끝내지 않고는 지상천국이 안 옵니다. 심각하다구요. 이거 하나만 잘되면 끝난다구요. 그 심각한 자극이 이 모든 것을 누르고 차 버릴 수 있는 이런 계속적인 자각성을 갖지 않고는 영원히 내 평화의 세계는 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 양심을 보지도 못하고 만지지도 못했지만, 사랑은 어때요? 여러분은 사랑이 필요해요? 사랑을 만질 수 있어요? 못 만집니다. 그러니 느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혼자서는 모릅니다. 사랑은 내게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자기 혼자 있을 때는 모릅니다. 그래서 남자에게는 대상인 여자가 나타나야 '우우웅' 하고 운동한다는 거예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자신에게도 사랑이 있는데, 자신 가운데 있는 그 사랑을 느끼지 못합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도 사랑의 대상이 필요했다는 논리가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남자예요, 여자예요?「양쪽 다입니다.」양쪽인데, 여러분도 마찬가지예요. 플러스 마이너스 양쪽을 다 가지고 있어요. 주체 대상이 있다는 것입니다. 남자는 마이너스보다 플러스 기질이 많습니다. 여자는 남자보다는 마이너스 기질이 많아요. 그래서 하나님도 여자가 필요하다는 말을 듣는 거예요. 정말이라구요. 거기에 대해 어떻게 대답할 거예요?

그래, 하나님도 여자가 필요해요? 여러분도 여자가 필요해요?「예.」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여자가 누구예요? 하나님이 여자가 필요하다면 사랑을 어떻게 하겠어요? 키스하겠어요, 만지기만 하겠어요, 좋아만 하겠어요? 이게 문제라구요. 이런 걸 다 질문하는 거예요. 마음도 못 보고 만져 보지 못하고, 사랑도 못 보고 만져 보지 못하지만 느낌으로 압니다. 하나님을 봤어요? 보지도 못하고, 이쪽에서 터치할 수도 없어요. 그렇지만 느낌으로 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몰라요? 양심이 있는 것을 왜 느낌으로만 알고,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게 되어 있느냐는 것입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상대해서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명도 못 보잖아요? 힘이란 것도 볼 수 없지요? 힘도 볼 수 없습니다. 왜 모르는 거예요? 내가 이렇게 점점 가까워지면 더 잘 보여요, 더 안 보여요?「더 안 보입니다.」그런 거라구요. 왜 그래요? 하나가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된 것은 자기 자체를 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상대를 보기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 눈은 눈을 보기 위해서 생겼어요?「아닙니다.」눈이 눈 자체를 못 보는 것입니다. 코가 코를 위해서 있는 거예요? 상대를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말도 자기를 위해서는 할 필요 없어요. 왜냐? 하나되어 있기 때문에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듣는 것도 그래요. 듣는 것도 상대적입니다. 내게는 필요 없어요. 손도 그렇습니다. 나 자신을 들기 위해서 손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구요. 필요 없다구요. 왜? 하나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되면 모르는 것입니다.

눈이 볼 때에, '아이구, 코 입이 같이 생각하고, 같이 나를 따라다닌다.'고 생각해요? 각각 따라다니는데도 그렇게 생각 안 한다는 것입니다. 코도 마찬가지입니다. 전부 따라다닌다구요, 몸뚱이도 따라다니고. 하나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을 모르고 다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여러분이 여기 심장에 귀를 대 보라구요. 청진기로 들어보면 쾅쾅쾅, 이거 폭탄이 터지는 소리 같다구요. 그런 거 알아요? 하루에 몇 번이나 그걸 생각하고 살아요? 한참 바쁠 때는 일년 동안에도 생각지 못하고 돌아다니는 거라구요. 그걸 생각해 보라구요. 그렇게 '쾅쾅!' 소리가 나는데도 우리는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 눈이 깜박깜박 거리는데 하루에 몇천 번 깜박거린다는 것을 생각해요? 하나되어 있기 때문에 모른다는 거예요. 여러분이 아이 때는 코딱지를 파서 이렇게 먹어 봤지요? (웃음) 그 맛이 무슨 맛이에요? 달아요, 짜요?「짭니다.」다 그 놀음을 했다는 말이구만. 그런데 왜 더럽지 않아요? 이거 했다가 다른 사람에게 먹이려고 하면, 미스터 김 같은 사람도 '이놈의 자식!' 할 거라구요.

큰일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는 왜 더럽지 않아요? 하나되어 있기 때문에 더럽지 않습니다. 여러분 매일 아침 변소에 가서 냄새 나는 일을 볼 때, '아이구, 크!' 하고 코를 막아요? 어떻게 해요? '이야, 오늘은 이상한 맛이다. 흠흠!' (웃음) 이런다구요. 왜 더럽지 않아요? 여러분이 소변을 볼 때 소변이 손에 묻어도 식당에 가면 그 손으로 밥 먹고 다 하잖아요? 그거 왜 그래요? 하나되어 있기 때문에 더럽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양심도 왜 모르느냐 하면, 하나되어 있기 때문에 모른다는 것입니다. 사랑도 왜 모르느냐 하면, 하나되어 있기 때문에 모릅니다. 생명도 하나되어 있기 때문에 모르고, 힘도 하나되어 있기 때문에 모르고, 하나님도 하나되어 있기 때문에 모르는 것입니다. 알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