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작용은 최고의 선을 지향하고 있어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267권 PDF전문보기

양심작용은 최고의 선을 지향하고 있어

또, 과학 논리를 중심삼고 제창하는 모든 전부도, 힘으로부터 연결된 우주 세계를 말하는 그 세계도 힘만 가지고 안 되는 거예요. 힘이 먼저냐, 작용이 먼저냐 하는 문제를 볼 때 힘이 생기기 전에 작용이 있어야 된다 이거예요. 여러분이 부부를 이루어서 사랑의 부부로 가정을 이룬다 하게 될 때에, 대번 남자 여자 만나 가지고 우리 사랑하는 가정을 이루자 해서 돼요? 사랑의 힘이 생길 때까지는 눈이 맞아야 되고, 말이 맞아야 되고, 귀가 맞아야 되고, 입이 맞아야 되고, 감정이 맞아야 되고, 모든 감각이 맞아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 작용이 연합해서 하나의 목적을 향하여 집중되게 될 때에 사랑의 힘이라는 것을 중심삼고 가정 형성이 되듯이 힘이 있기 전에 작용이 있어야 됩니다.

그러면 작용이 먼저냐? 작용이 혼자 작용하느냐, 이 문제예요. 혼자 작용할 수 없다구요. 작용은 반드시 주체와 대상 관계가 없으면 작용 안 합니다. 이러한 논리적 전개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작용이 있기 전에 주체 대상이 있어야 됩니다. 모든 피조세계는 주체 대상으로 돼 있어요. 광물세계도 플러스 이온 마이너스 이온, 식물세계도 수술 암술, 동물세계도 수놈 암놈, 남자세계, 인간세계는 남자 여자입니다. 전부 다 상대적인 관계를 갖게 돼 있습니다.

그것 왜 그러느냐? 작용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무슨 작용? 자기 존재목적을 완성하기 위한 작용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제반 작용을 하기 위해서는 제반 내용이 일체될 수 있는 주체적 대상적인 존재가 절대 필요한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 양심작용, 하나님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가 큰 문제입니다. 우리 양심작용은 최고의 선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그 무엇인가 무한한 가치를 추구해요. 여러분의 양심의 욕망이 얼마나 커요? 이건 무한한 한계선을 넘고도 또 활동하고 남을 수 있는 욕망을 갖고 있어요. 그 욕망이 자고로 변한 적이 없습니다. 우리 인류 시조 제1대조도 그와 같은 욕망을 가졌고, 수많은 역사노정에 어려운 역사를 거쳐, 전쟁역사를 거쳐, 곡절의 역사로 전복되는 사실들이 많았지마는 우리 양심의 욕망은 변함이 없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로 그 욕망은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시대를 넘어서 미래의 후손을 넘어서도 영원한 역사시대를 넘어서 이 욕망은 작용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작용한다는 사실이 혼자 작용할 수 없다는 거예요. 어딘가 모르지만 그 주체든가 대상적인 그 무엇이 있기 때문에 내가 그런 작용을 계속할 수 있고, 역사를 넘어 계속할 수 있다는 사실은 그런 주체적 무엇이 있다고 하는 것을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