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의 묘소 앞에서도 북한 해방을 맹세했다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306권 PDF전문보기

부모님의 묘소 앞에서도 북한 해방을 맹세했다

이번 훈독회가 필요했어요, 안 했어요? 예언가들을 통해 선생님이 지금 가르치고 있는 영계의 안팎의 모든 것을, 안방까지, 세계의 굴다리까지 전부 다 꿰차 가지고 정정당당한 축복의 코스를 만들어 놓았다는 거예요. 이 길을 안 가겠다고 하면 내가 멸망시킬 거라구요. 거꾸로 꽂아 버릴 거라구요. 선생님이 무서운 사람이라구요.

보라구요. 어머니 아버지, 일족이 선생님이 길을 떠날 때 사지를 껴안고 목을 안고 통곡하던 것이 잊혀지지 않아요. 어디를 가려고 하느냐고, 누이동생, 누나들이 붙들고 어디 가려고 하느냐고 제발 가지 말라는 거예요. 그러나 안주할 수 없어요. 뒤를 돌아보지 않고 다 끊고 나서야 됩니다. (녹음이 잠시 중단됨)

흥남 감옥에 있는 선생님을 찾아오려면 통행증을 받아야 돼요. 그 미숫가루를 해 오기 위해서 거지가 돼 가지고 사돈의 팔촌까지 찾아가서 한 숟가락씩 모아 가지고 만든 것을 내가 알고 있는 거예요. 그 미숫가루를 고통 받는 죄수들에게 나눠주는 거예요. 거기에서 수년이 되어도 면회를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옷 같은 것을 그 자리에서 다 나누어주는 거예요.

그러니 얼마나 기가 막히겠어요? ‘이놈의 자식, 너를 위해서 어미가 준비했지 누구를 위해서 준비했느냐?’ 이거예요. 그래서 내가 책망하는 거예요. 어머니를 닦아세우던 일이 잊혀지지 않아요. 얼마나 어머니가 서글펐으면 통곡하면서 내던 이빨 소리가 잊혀지지 않아요. 눈물이 소낙비같이 줄줄줄 흐르는 것을 봤다구요. 그 자리에서 나는 아무개의 아들이 아니라고, 그런 어미의 아들이 아니라고 한 거예요. 어머니를 모시지 못했어요.

그런 어머니인데, 지난번에 북한에 가 가지고 부모의 묘 앞에 서게 될 때 누이동생이 통곡을 하는 자리에서도…. 누이동생이 ‘어머니 아버지! 그렇게 고대하던 아무개 여기 왔소!’ 하고 통곡한 거예요. 내가 통곡을 하면 창자가 끊어질 수 있는 자리라구요. 정이 많은 선생님으로서 그 자리를 극복하는 것이 제일 어려운데도 불구하고 눈물 하나 흘리지 않았습니다.

‘내가 이번에 찾아온 것은 북한의 해방을 위해서지, 성묘를 하러 찾아온 것이 아니오. 원수들이 바라보는 눈앞에서 북한 백성들보다 어미 아비를 더 사랑하고 왔다고, 그 공산당 패가 피는 물보다도 진하다는 이런 말을 나에게 걸고 할 것이 아니오?’ 하면서 그 자리를 찾았던 것을 내가 잊지 못해요.

내가 지금까지 자식의 도리를 못 했어요. 남북을 통일해 가지고 역사와 더불어, 선조들과 더불어 후대를 사랑할 수 있는 자리에서 이 자리에 찾아와 가지고 부모님을 뵙겠다고 약속했어요. 그 약속을 이루기 위해서 지금 별의별 오해를 받으면서도 이 놀음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공산권이 알아요, 공산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