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을 품고 넘어야 할 제물의 고개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02권 PDF전문보기

소망을 품고 넘어야 할 제물의 고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찾아오실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떠한 자리에 있어야 하는가? 먼저 만물을 대신한 물질적인 것을 쳐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고 하셨습니다. 다음에는 사랑하는 아들딸까지 칠 수 있어야 하며, 최후에는 내 몸까지도 제물로 바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넘어야 할 제물의 고개입니다. 우리가 이 제물의 고개를 넘을 때 비로소 하늘이 우리를 찾아오시고 우리와 인연을 맺게 된다는 것을 오늘날 대부분의 믿는 성도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그러한 길에 세우실 때에 여러분은 자신있게 그 길을 넘어가야 되겠습니다.

6천년 역사는 단순한 역사가 아니고 우주적인 복귀역사이며, 개인의 복귀역사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자신이 우주의 역사를 책임질 수 있는 중심에 불변의 모습을 갖추고 하늘을 대신하여 서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역사의 고개를 넘어선 자가 될 수 없고, 섭리의 법도에 순응하는 입장에 설 수 없는 것입니다.

옛날의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사랑하던 땅 갈데아 우르, 그때까지 정들었던 모든 생활환경을 버리고 떠나야 하는 입장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육신을 중심한 물질적인 고통을 당하게 된 입장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아브라함은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만일 아브라함이 그러한 자리에서 낙심하였다면 그의 후손들이 하나님의 축복과 은사를 받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도 6천년간 복귀의 역사를 섭리해 오신 하나님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그 복귀의 조건을 맡아 그것을 넘어설 수 있는 슬기를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지금까지의 역사과정에 하늘이 넘어온 섭리의 고개가 있었듯이 끝날에 처한 우리에게도 넘어야 할 섭리의 고개가 있습니다.그러므로 여러분의 생애에서 6천년의 모든 제물의 조건을 탕감함으로써 하늘이 자유롭게 행차하실 수 있고 주께서 자유롭게 오실 수 있는 길을 닦아야 합니다. 만일 여러분이 이것을 망각한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아들딸이 될수 없고, 하나님을 대하는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갈데아 우르를 떠나 소망의 땅 가나안복지로 들어갈 때까지 천신만고의 수고의 노정과 제물적인 희생의 노정을 걸었기 때문에 민족을 대신하여 4백년의 고개를 넘어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가지고 있던 모든 물질과, 심지어는 자기의 부인까지도 포기할 수 있었고 백세에 얻은 만득자 이삭까지도 하나님께 제물로 드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까지도 바칠 수 있는 믿음으로써 탕감복귀의 노정을 걸어간 통일적인 기준 위에 섰기 때문에 그는 인류의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성경에는 또 한 사람 제물의 노정을 걸어간 욥의 일생에 관한 기록이 나옵니다. 욥은 하나님으로부터 복받을 수 있는 축복권내에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물질축복과 자녀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사탄이 어떻게 욥이 축복을 받을 수 있겠느냐고 하나님께 항의하고 나섰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탄에게 욥을 시험할 것을 허락해 주었습니다. 그리하여 사탄은 먼저 그의 축복받은 모든 물질을 쳤습니다. 그리고 자녀들을 쳤습니다. 그 다음에는 욥의 육신까지 쳤습니다. 그러자 욥의 모든 친구와 이웃 사람들이 욥을 비웃고 조롱했으며 사랑하는 부인까지 욥을 비난했습니다.

여러분은 이와 같이 즐겁게 살아갈 수 있는 물질과 사랑하는 자녀를 잃어버린 욥의 입장, 또 친구들로부터 배신당하고 부인으로부터 비난을 받았던 그 입장을 생각해 보아야 되겠습니다.

자기 몸을 기왓장으로 긁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만신창이가 된 욥이었지만 그는 결코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묵묵히 명상할 수 있었고, 그 괴로움을 넘어 하나님편에서 병자의 심정을 체휼할 수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욥이었기 때문에 그는 잃어버린 만물과 자녀를 다시 얻을 수 있었고, 하늘로부터 더 큰 축복을 받았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복음 전파의 길을 나설 때에 먼저 자신의 모든 환경을 버리셨습니다. 즉, 30여 평생 살아왔던 자기의 가정적인 생활환경을 버린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외아들의 입장에 있었던 자신, 인류의 영원한 참부모의 입장에 설 수 있었던 자신을 예수님은 버리셨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당신의 몸과 자신의 가정과, 자신의 종족과, 자신의 민족을 버리고 자신의 소망까지도 버려야 하는 십자가의 길에서도 낙망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처음 하나님 앞에 세우신 뜻, 하나님과 약속하신 섭리를 이뤄드릴 수 있는 길만을 바라보면서 망하는 자의 발걸음이었지만 소망을 갖고 골고다의 길을 넘으셨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