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아를 알아볼 수 있는 안목과 심정기준을 가져야 할 우리 인간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05권 PDF전문보기

메시아를 알아볼 수 있는 안목과 심정기준을 가져야 할 우리 인간

예수님이 왔다가신 이후 2천년, 하늘을 위하여 나선 자 가운데 자신의 생명에 애착심이 없었던 사람이 어디 있었으며, 심정에 느껴오는 슬픔을 느낄 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생명에 대한 애착과 슬픔보다도 주인의 슬픔과 주인의 생명이 찢기고 있다는 사실을 느꼈던 것입니다. 우리의 선조들은 자신들의 모든 것을 부정하고 하늘을 향하여 솟구치는 심정을 지녔던 무리였습니다.

그러한 선조들의 피와 땀과 눈물로 얼룩져 내려온 하늘의 섭리 노정은 어디로 갔는가? 지금까지 인류의 역사 노정을 동반하여 내려왔는데 이제 역사의 종말에는 어디로 갈 것인가? 여기에서 끝나고 말 것인가, 아니면 어떠한 새로운 방향을 찾아 다시 갈 것인가? 이렇게 볼 때 이 섭리의 종말시대를 맞이하여 전체를 대신한 피의 제물, 눈물의 제물, 땀의 제물이 되어 `하늘이시여! 나를 받으십시오' 할 수 있는 한 모습이 나타난다면 그는 이 종말시대의 눈물의 구세주요, 피땀의 구세주요, 생명의 구세주일 것입니다.

그러한 분이 있어 그러한 섭리를 책임진다 할진대, 그는 천적인 조건을 동반하여 지상에 나타날 것이며, 천적인 심정을 대신하여 지상에 나타날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런 선지자를 대하여 될 때, 그분의 천적인 심정과 천적인 인격은 모를지라도 현실을 부정하고 다시 바라볼 줄 아는 마음이라도 가질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자기가 살고 있는 자리에서 다시 눈을 떠 바라보다 가지고 자기들이 모르는 제2의 가치와 제2의 인격의 기준을 분별할 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못한다 할진대 여러분은 예수님이 이 땅 위에 오시더라도 그를 모를 것입니다.

보십시오. 이스라엘민족 60만 대중 앞에 선 모세는 바로 궁중에서 자랐고 미디안 광야에서 양을 치던 목자였습니다. 그 자체를 그냥 바라보면 아무 가치도 없고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모세가 천적인 심정과 천적인 인격을 갖추어 나타나게 될 때에 이스라엘민족은 다시 눈을 떠서 그를 바라보아야 했었습니다. 그런데 그러지 못하였으므로 그들은 모세를 따라다녔지만 광야에서 다 쓰러졌던 것입니다. 예수시대에도 마찬가지였으며, 오늘날 역사를 종말시대에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죄악역사는 여러분 자신에서부터 청산하여야 합니다. 여러분이 역사에 마이너스 되는 입장에 서면 지옥이요, 플러스 될 수 있는 입장에 서면 천국입니다. 또 시대와 여러분을 비교할 때, 시대가 여러분보다 크면 지옥이요 여러분이 시대보다 크면 천국입니다.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까지 천지 운세를 따라 나온 인간들은 천지 운세를 조정할 수 있는 날을 회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한날을 바라보시며 6천년의 기나긴 세월을 역사해 나오고 계시는 것입니다. 천지 운세를 따라 나오던 역사의 슬픔을 박차고 이 운세를 주관할 수 있는 하나의 용자를 찾아 헤맨 것이 하나님의 6천년 복귀섭리 노정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회복하고 찾아야 할 운명에 처하여 있는 우리들은 제2의 나의 눈을 가지고, 제2의 나의 생명의 감촉을 느끼면서, 제2의 나의 이념을 찾아, 제2의 나의 인격을 갖추어 그 가치를 자랑하여야 합니다. 그리하여 천지 운세를 대신하여 여러분을 세워 놓고 복 빌어 줄 수 있는 존재가 나타나야만 6천년 섭리는 종결될 수 있습니다. 또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영광받으실 수 있는 조건이 성립된다는 것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세 제자를 거느리고 기도하던 예수의 모습을 회상해 보면, 그는 천지의 심정을 통하여, 자기의 심정을 통하여 하나님의 심정을 움직이려는 비장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렇게 기도하던 곳이 겟세마네 동산이었습니다. 인류의 심정을 움직여 하늘과 땅, 천정과 지정을 통합시켜야 할 예수가 인정에서 배척을 당하고, 땅에서 축출당하는 입장에 서게 됨으로써 천정의 인연을 맺고 넘어가야 했습니다. 그런 자리가 겟세마네 동산이었던 것입니다.

그 자리에 인간을 대표한 세 제자가 같이 있었지만 예수가 느끼는 심정과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이 느끼는 심정이 달랐습니다.

천정을 그리며 죽음을 앞에 놓고 재차 하늘을 바라보는 예수의 시선을 죽음의 고개를 넘어 부활의 영광에 사무칠 수 있었으나, 자기를 중심삼고 바라보던 제자들은 천정에 사무친 예수의 심정을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일을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참으로 염치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것이 하늘을 배반한 선조들의 행동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