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실존체가 나타나게 되면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06권 PDF전문보기

하나님의 실존체가 나타나게 되면

인간의 슬픔은 타락으로 말미암아 빚어졌습니다. 더 나아가서 하늘의 슬픔도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빚어졌다 할진대, 이 슬픔을 해원할 수 있는 한날을 예고하는 어떠한 뜻이 있어야 할 것이고, 이를 실천할 수 있는 방편이 있어야 할 것이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어떠한 사람이 있어야 함은 틀림없을 것입니다.

이 일을 감당하고 이 일을 책임하도록 하기 위해 보내졌던 분이 종교적으로 보면 도(道)의 책임을 진 자인 것입니다.

전세계적인 어떠한 도의 사명, 구세주의 사명을 가지고 오는 것을 두고서 기독교적으로 예수의 강림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중심존재가 천상의 슬픔과 지상의 슬픔을 해원하기 위해 이 땅에 나타난다면 절대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나타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실존체가 나타나는 데 있어서는 역사의 과정을 부정할 수 없고 시대상을 도외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늘이 슬픈 과정을 거친 역사가 있기 때문에 예수님이 천주의 이념을 대신할 수 있는 이념의 주체요, 목적의 주체요, 생명의 주체로 이 땅 위에 나타나기 위해서는 그러한 과정을 거쳐야 됩니다.

실존한다는 것은 인연의 과정을 거쳐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실존의 토대를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도 역사적으로 인연된 그 슬픈 심정을 체휼해야 되었던 것입니다. 인간을 대표해서 그런 심정을 체휼하는 반면 하늘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슬픈 심정까지 체휼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인륜적으로 보는 관과 종교적으로 보는 관은 다릅니다. 인간들이 볼 때에는 자기를 부정하고 전체를 대신하여 대중의 고통을 지고자 하는 사람을 선한 사람이라 하여 추앙하지만 종교적으로 볼 때는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적인 슬픔을 대신하는 동시에 천륜의 슬픔을 대신할 수 있는 입장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타락으로 저끄러지고 엉크러진 그 원한의 곡절을 품어야 할 인간들이 반드시 갖추지 않으면 안될 천적인 요구요 전인류의 요구인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이러한 원한을 해원하고 타락으로 저끄러진 곡절을 타파하기 위해 오신 분이 예수님이라 할진대, 그는 4천년 인류 역사노정에서의 어느 누구도 체휼하지 못한 하나님이 슬픈 심정을 느끼는 길을 가야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4천년 역사노정에 나타났던 어떠한 주의보다도 하나님의 심정 깊숙이 사무쳐 있는 슬픔의 감정을 체휼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는 것입니다. 만일 땅 위의 인간 중에 하늘의 슬픔 심정을 체휼한 자가 있다 할진대, 그는 눈물없이 땅을 바라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늘과 땅까지 슬픔에 사무쳐 탄식하고 통곡하는 경지에 부딪치고 만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심정을 느끼셨습니다.

그것이 누구 때문이었던가. 첫째는 하늘 때문이요, 하늘이 인간을 위하여 그를 이 땅에 보내셨으니 그 다음엔 인간 때문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의 슬픔을 품고 인간을 붙들고 울어야 했던 예수님이요, 인간의 슬픈 사정을 붙들고 하늘을 향하여 호소하며 울어야 했던 예수님이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슬픈 심정을 일소했다는 한 시간, 즉 하나님의 심중에 사무쳐 있는 슬픔을 해소시킬 수 있는 한 시간이 찾아오지 않는 한, 인류의 평화도 이루어질 수 없고 천적인 하나의 이념도 이 땅 위에서 결실의 한 때를 맞이할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곡절에 처해 있는 여러분, 이런 곡절에 사무쳐 허덕이고 있는 오늘날 인류가 이제 새로운 각성을 해야 할 때가 왔습니다. 울려오는 경종의 소리에 우리들은 때가 다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오늘 이때는 역사상에 두려운 때가 많았다 할지라도 이 이상 두려운 때가 없었고, 슬픈 때가 있었다 할지라도, 이 이상 슬픈 때가 없었다고 할 수 있는 그런 때인 것입니다. 왜냐 하면, 부모가 자식을 모르고 자식이 부모를 모르는 때이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귀한 정적인 인연을 자기 마음대로 포기하고 파탄시켜 버리는 그들이 어디에 가서 자신의 슬픔을 위안받을 수 있을 것인지를 생각하면 그 이상의 슬픔이 없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