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날에 요구되는 것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06권 PDF전문보기

끝날에 요구되는 것

그러면 끝날에 요구되는 것은 무엇이냐. 요한적 기독교입니다. 예수님은 요한이 죽지 않고 주를 모신다고 하셨습니다. 요한은 순교를 당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끝날에 요한적 기독교가 새로이 나타나 주님을 상봉하게 될 것을 예지하시고 그런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요한은 예수님의 품에서 귀염을 받았고 깊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요한은 사랑을 상징하였습니다. 그래서 요한적 기독교는 사랑의 기독교인데, 끝날에는 이 요한적 기독교, 사랑의 기독교가 나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보여 주었거늘, 아직까지 기독교인들은 자기들이 어떤 문으로 들어가야 할 것인지 모르고 있습니다. 베드로적인 문도 좋고 야고보적인 문도 좋으나 우리는 요한적인 문, 사랑의 문을 통해 찾아가야 합니다. 이 사랑의 문은 예수님께서 정면으로 바라보신 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문을 바라보시며 6천년 동안 싸우셨고 예수님도 그 문을 바라보시고 2천년 동안을 싸우셨거늘 역사적인 소망의 문은 아직까지 열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늘은 이 문을 열 수 있는 한 대표자를 세워 약속을 이루려 하셨습니다. 이것이 왈, 말씀을 이루시기 위해 신부라는 명사를 세워 놓으신 이유인 것입니다.

그러면 다시 오시는 주님 앞에 세계 인류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이뇨. 기도해야 됩니다. '당신께서 땅 위에 오셔서 남기신 슬픔이 이것인 것을 알았습니다. 살아 생전에 해원하시지 못한 그 원한의 곡절이 이것인 것을 알았습니다. 역사의 원한을 걸어 놓고 슬퍼하시며 싸우시기에 얼마나 수고하셨습니까? ' 하고 예수님을 위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2천년 전 예수님을 배반하던 사도 대신 산 사도, 배반하기 전의 그 사도들과 같은 성도가 되지 못하면 역사적인 인물, 역사적인 구원의 완성자가 되어야 할 인류, 구원섭리를 완수해야 할 인류는 하늘 앞에 체면을 세울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끝날인 오늘날 재림의 한날을 예비하고 바라고 있는 세계 기독교인들은 겟세마네동산과 갈보리산상에서 예수님을 모른다 하던 세 제자와 같이 되지 말고, 교단을 통솔하고 수많은 성도들을 품에 품고 예수님 대신 기도할 수 있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개도 대신 넘어갈 수 있는 제자들이 되어야겠습니다. 교회는 그러한 모임이 되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