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바른 길로 돌려잡기 위한 하나님의 수고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07권 PDF전문보기

인간을 바른 길로 돌려잡기 위한 하나님의 수고

오늘날 역사의 흐름 속에서 인간을 중심삼고 나아가는 방향, 인간들이 가고 있는 방향은 하늘이 지향하는 방향이 아니라 그 반대 방향입니다. 그래서 하늘은 이러한 인간들을 돌려잡기 위해 이들이 가는 길을 가로막은 때가 한 두번이 아니었습니다.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노아를 세워 가정적인 기준을 세우고 가정의 올바른 이념을 찾으려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하늘은 인류를 전멸시키는 한이 있다 하더라도 그릇된 모든 것을 가로막고 하늘이 지향하는 방향으로 노아가정을 이끌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함의 실수로 그 가정을 찾지 못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어떠했습니까? 본향을 찾기 위해 이끌어낸 노아도 불쌍하였거니와 고국 산천 갈대아 우르를 떠나 축복의 땅인 가나안을 찾기 위하여 헤매던 아브라함도 불쌍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아브라함뿐만 아니라 야곱, 모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본연의 민족을 회복하기 위하여 모세를 애급에서 광야의 황무지로 내몰던 하나님의 심정은 어떠했겠습니까? 모세의 생활보다도 더 심절하고 더 분하고 더 통곡에 사무쳐 이스라엘 민족을 애급에서 몰아내신 하나님의 심정을 아무도 몰랐습니다. 어느 누가 그런 하나님의 심정을 알았습니까? 그리고 민족을 지도하던 모세가 하나님의 심정에 취하여 변하지 않고 나갔던들 반석을 두 번 치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가 하늘의 심정을 통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그의 일신이 오히려 민족의 갈 길을 막았던 원통한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본연의 가정을 찾기 위하여 하늘이 몰아냈던 노아도 그러했고, 축복의 땅을 세우기 위하여 몰아냈던 아브라함도 그러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향 땅을 그리워하던 야곱은 어떠했습니까? 애급에서 죽음이 가까와졌을 때 자기의 뼈를 고향에 묻어 달라고 유언하였습니다. 고향 땅이 얼마나 그리웠으면 그랬겠어요? 자기가 죽게 되더라도 원수의 땅에는 그시체가 썩어 흘러내리는 물까지도 남겨 놓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선민의 긍지, 선민의 감정을 소중하게 느꼈던 야곱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다시 모세를 보십시오. 본연의 민족을 찾기 위하여 모세를 몰아냈던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그로 말미암아 민족을 거느리고 살고 싶으셨겠는가? 그러나 그 뜻을 모세는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온 인류에게 본향을 가정을 찾고 산천을 찾아 그 땅에 민족을 세우고 국가를 세워 세계를 회복하게 하려는 하나님의 뜻을, 세움받은 사람들이 받들지 못하고 실패해 나온다 할지라도 그 뜻은 뜻대로 더 큰 범위를 갖추는 조건적인 인연을 맺어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본연의 민족을 찾으려 했던 하나님의 뜻은 연장되더라도 하늘은 이것을 수습하고 본연의 국가를 세우기 위하여 메시아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 메시아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민족을 중심삼고 하나님이 주도하실 수 있는 국가 형태를 갖추어 천적인 주권을 이 땅 위에 세워 드리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간절했겠습니까. 그런데 민족의 책임자로 오셨던 예수님을 이스라엘 민족은 어떻게 대했습니까? 그를 중심삼고 하나의 본연의 국가를 건설하고 사탄들을 향해 행군하는 천군이 되어야 하고, 하늘의 정병이 되어야 할 이스라엘 민족이 어떠했습니까?

예수님의 죽음인 생이별입니다. 생이별이예요.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선조, 신앙의 선조들은 무엇이 잘났다고 자랑할 아무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죽였던 것은 선민의 도리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가야 했던 길은 그런 길이 아닙니다. 생이별의 길이 아니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