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날에 필요한 진리와 나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07권 PDF전문보기

끝날에 필요한 진리와 나

종교의 진리는 어떤 진리여야 합니까? 내용만을 설명하는 진리는 필요없습니다. 몸이 `그렇습니다' 마음이 `그렇습니다' 심정이 `그렇습니다' 할 수 있는 그것이 나와야 됩니다. 그러한 주의, 그러한 이념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이 우리의 주위에서 들려오거나 혹은 인연되게 되면 여러분의 마음은 거기에 이끌려갈 것입니다. 내가 무슨 일이 있어서 그곳에 가야 할 터인데 하고 몸이 요구하더라도, 그런 조건이 구비되어 있더라도 그것을 다 부정하고, 그것을 다 버리고 그리로 가야 합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이끄는 느낌을 주는 말씀이 있다면, 여러분은 보따리를 다 정리하고, 김삿갓 모양으로 그저 괴나리봇짐을 등에 지고 그리로 따라가 보라는 말입니다. 망하지 않습니다. 그는 역사와 더불어 남아질 것입니다.

그런 자가 되려면 여러분은 옛날의 그 모양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합당치 않은 탈바가지를 벗어 버리십시오. 종교가는 종교가의 탈을 벗어 버리십시오. 양심가는 양심의 탈을 벗어 버리십시오. 종교의 무슨 무슨간판, 다 떼어 버리십시오. 여러분이 지금 통일교회에 나오고 있지만 저는 통일교회 간판 뗄 날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통일교회의 간판을 내건 것은 상대적인 조건이 있기 때문에 투쟁상대가 나왔기 때문에 간판이 필요하지 떼어 버려야 합니다. 여러분, 마음세계에 무슨 간판이 필요가 있어요? 심정의 세계에 무슨 간판이 필요해요? 그냥 있어도 자기 스스로 압니다. 그냥 있어도 스스로 하게 됩니다. 그것이 해결지을 수 있는 제1기준입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은 어떠한 생활을 해 왔습니까? 오늘 여러분들은 어떤 위치에 있습니까? 두 세계에서 허덕이는 자신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여기에서 자신이 즐길 수 있는 것은 몸이 이끄는 방향이 아니고 마음이 이끄는 방향입니다.

오늘날 세상을 바라보게 될 때 몸이 이끄는 방향, 외적인 조건은 만점입니다. 완전히 구비되어 있습니다. 몇 백 점으로 구비되어 있습니다. 개인을 넘어 가정을 넘어 세계형태로 벌어져 있기 때문에 몇 백 점으로 구비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이끄는 방향은 그 몇 퍼센트밖에 안됩니다. 이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이 세상을 심판하고 싶은 하늘입니다. 그런 하늘의 서러움은 어떻겠느냐는 것입니다. 그 서러움을 알면서 마음이 즐거워 할 수 있는 노정을 찾아 나아가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에 도를 믿는 사람들은 목이 떨어져도 견디었던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통일교회에 오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진리, 여기서 말하는 말씀 앞에 자신의 몸이 굴복하려 하고, 마음이 굴복하려 하고, 심정이 숙여지거든 그것은 마지막의 것인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뇨. 내 몸의 영원한 주인입니다. 내 심정의 영원한 주인입니다. 본연의 세계는 아무리 사랑하는 부부라 할지라도 남편이 부인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한다고 해서 부인이 그 남편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또 부인이 하나님을 남편보다 더 사랑한다고 해서 왜 하나님을 나보다 더 사랑하느냐고 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보고 좋아할 수 있는 세계가 천국입니다. 세상의 어떠한 사랑, 어떠한 내용을 초월한 주체적인 입장에 계신 하나님은 내 몸의 영원한 주인입니다. 몸뚱이의 영원한 주인이신 하나님의 품, 그 동산에 있으면 죽어도 좋은 것입니다. 내 마음의 영원한 주인, 내 심정의 영원한 주인이면 됐지 무엇을 더 바라겠습니까?

그러면 여러분이 심정으로 그리는 세계는 어떠한 곳입니까? 요것이나 요것처럼 외계의 감각을 통하여 들어오는, 오관을 통하여 들어오는, 인식 세계에서 빚어진 그 세계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세계, 정적인 세계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 세계는 아주 작은 하나의 미립자를 통해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정의 세계입니다. 여러분, 그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이해 못하면 안 됩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셨습니다.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마 11:15)''라고. 통념적인 감성을 가지고는 주체적이요 원형적인 이념세계를 느낄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