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정의 인연을 통한 구원의 길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09권 PDF전문보기

심정의 인연을 통한 구원의 길

오늘날 우리들은 타락한 세계에 살고 있는 것을 다시 한 번 분하게 여겨야 됩니다. '하나님, 제가 왜 타락한 아담 해와의 아들딸로 태어났습니까. 어찌하여 내가 타락의 후손으로 태어났습니까. 만일 하나님이 저를 인간의 조상으로 지으셨더라면 저는 아담같이 타락하지 않았을 것이요, 해와같이 타락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하오니, 하나님이여, 타락하기 전 아담 해와의 심정을 저에게 허락하실 수 없겠습니까? 아담 해와를 소망의 심정으로 바라보시던 내용이 있다 할진대, 그 심정의 내용을 저에게 나타내 주실 수 없겠습니까?' 하는 기도를 해야 됩니다. 땅 위에서, 타락의 후손 중에서 이러한 기도를 하는 사람이 나와야 됩니다. 성경에도 그냥 주신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문을 두드려야 열어 주고, 찾아야 찾아진다고 했습니다. 예수는 그런 기도를 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오셔서 먼저 땅을 주관하는 만왕의 왕이 되려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슬픈 자의 왕이 되려 하셨고, 우는 자의 왕이 되고 고통받고 죽어가는 자의 왕이 되려 하시고, 지상에서 사탄세계를 정복하기 위한 개척의 길에 나섰던 것입니다. 오늘날 신자들은 예수를 보고 하나님의 독생자요, 우리의 신랑이라고들 말하지만 그것은 모두 결과적인 명사입니다.

예수의 신부가 되려는 사람들은 예수의 심정을 본받아야 합니다. 예수는 심정의 승리자가 되신 분이요, 심정을 갖고 슬픈 자의 왕이 되기 위하여 우신 분이요, 고통받는 자의 왕이 되기 위하여 고통을 받으신 분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심정을 갖고 죽는 자의 왕이 되기 위하여 죽으셨기 때문에 그를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심정적인 인연을 맺지 않으면 구원과 하등의 관계가 없습니다. 천당이 다 뭡니까. 지옥이 더 가까울 것입니다. 천지의 이치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싸우기 위해서 살고 있습니다. 일편단심 이 대우주에 심정세계를 다시 세우려는 것이 구원역사이니, 그 구원역사의 노정에서 내가 어느 정도의 재료가 될 수 있겠느냐 하는 것만 생각해야 합니다. 이 만물을 재료로 삼고, 인류를 재료로 삼아, 영계의 천천만 성도를 재료로 삼아야 되는데, 내가 움직이면 만물이 어느 정도 움직이고, 인류가 어느 정도 움직이고, 천상의 천천만 성도가 어느 정도까지 움직이느냐. 내가 땅 위에서 부르짖는 것이 이 우주에 어느 범위까지 심정의 반응을 불러일으키느냐에 따라 천상에서 나의 가치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예수가 죽는 순간의 슬픔은 하늘에 반영되었고 만우주에 반영되었습니다. 때문에 예수는 구주입니다. 어떤 구주입니까? 심정의 구주입니다. 심정의 구주.

이런 경지에서 여러분은 만물을 대하여, '면목이 없구나. 본연의 인간조상과 더불어 하나님의 심정을 노래하면서 영원히 그 품에 안겨 살기를 얼마나 고대했느냐. 고대하던 일차적인 소망은 깨져버리고 한스러운 타락의 후손을 맞이하여 지금까지 탄식권내에서 다시 제2의 인간조상을 맞기 위한 역사노정을 거쳐오기에 얼마나 수고했느냐'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기쁨의 세계에 있어야 할 것인데, 인간으로 말미암아 슬픈 세계, 탄식권내에 있게 된 만물을 바라보며, 그 가운데에 무궁무진한 슬픔이 내재되어 있다는 것을 느끼는 자라야 하나님의 심정의 동반자가 될 수 있습니다. 왜? 하나님이 그렇기 때문입니다.

기쁨의 세계에 있어야 할 것인데, 인간으로 말미암아 슬픈 세계, 탄식권내에 있게 된 만물을 바라보며, 그 가운데에 무궁무진한 슬픔이 내재되어 있다는 것을 느끼는 자라야 하나님의 심정의 동반자가 될 수 있습니다. 왜? 하나님이 그렇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자랑할 게 뭐 있어요? 없어요. 그러므로 예수는 '교만하지 말라,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같이 하라,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버리고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 하셨습니다. 왜 이런 말을 하셨습니까? 지금까지의 모든 곡절을 한꺼번에 탕감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역설적인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