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날은 언제인가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09권 PDF전문보기

심판날은 언제인가

그러면 심판날은 언제인가? 우리의 사정을 호소할 수 있는 날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위하여 얼마만큼 수고하셨고, 얼마만큼 곡절을 가지셨고, 우리를 찾기 위하여 얼마만큼 참으시고 수고하셨던가를 깨달아, 간곡한 심정으로 통곡해야 할 날이 심판날입니다.

오늘날 기독교 신자들의 신앙관으로는 심판날이 자기들의 사정을 노래할 수 있는 날인 줄 알지만 아닙니다. 주를 상봉할 수 있고 즐거운 마음으로 하늘 앞에 경배할 수 있는 날인 줄 알지만 아닙니다. 그것들은 다 지나갑니다. 바울이 말하기를 '믿음과 소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전 13:13)' 하였거늘, 천상과 인연되어진 자, 심정에 화하여 하늘을 우러러볼 줄 알고 그 심정에 동하여 예수를 붙드는 자를 예수도 고대할 것이고 하늘도 고대할 것입니다. 그런 자를 찾아 세우는 날이 6천년 종말시대에 있을 심판의 날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인간을 대하여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나는 너희의 아버지이고 너희는 나의 아들'이라고. 또 예수는 말씀하시기를 '나는 너희의 신랑이요, 너희는 나의 신부'라 하였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너희는 나의 친구'라 하였습니다. '네 피살을 다 뿌리면서 원수를 위해 복을 빌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말씀들은 무엇을 근거로 하신 것인고? 천상에 사무친 천적인 심정을 대하는 예수에게는 민족을 붙들고 그 민족을 대신하여 하지 않으면 안 될 책임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기쁘고 행복스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슬프고 원통스럽고 분한 것을 책임져야 했던 것입니다. 분한 역사를 대신하여 홀로 싸우겠다는 심정이 앞섰기에 배반한 민족을 붙들고 기도하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자신을 몰아내는 모든 반역자들을 위해 변명하던 예수의 심정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역사는 그냥 지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2천년 전의 예수를 회고해 볼 때, 그는 한낱 청년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당시의 어떤 제사장이나 교법사나 서기관들의 눈에 띌래야 띌 수 없는 미미한 존재였습니다. 그는 많이 배우지도 못했습니다. 그는 목수의 아들이었고 그의 형제들도 그가 메시아인지 몰랐습니다.

그와 같은 입장에서 볼 때 그는 세례 요한만도 못하고, 규례를 지키는데 있어서는 유대교인만도 못하고, 행동하는 데 있어서는 교법사만도 못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예수가 어떻게 만민의 메시아가 될 수 있었으며, 만우주의 구주가 될 수 있었는가? 외모가 훌륭해서 그런 것이 아니요, 그의 배경과 권세가 당당해서 그런 것이 아니요, 그를 옹위하는 대중이 있어서 그런 것도 아닙니다. 단 하나의 조건이 있었으니, 그것은 그가 천륜에 흐르는 골수의 심정을 통하였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역사상의 모든 인류가 그를 메시아라고 추앙할 수 있는 하나의 조건이 되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되 십자가에 달려 죽어간 예수를 믿었습니다. 피흘리고 죽어간 예수를 믿었습니다. 그러나 정적인 세계에는 사망이 없습니다. 정적인 세계에서는 역사를 초월합니다. 정적인 심정세계에서는 시공을 초월합니다. 하늘의 심정이 동할 때 천지가 움직여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것은 창조의 원칙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되 십자가의 심정을 믿을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믿는 성도를 그리워해야 되겠습니다. 십자가의 심정을 전해주는 하나의 교직자가 필요한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인간의 타락으로 인해 엉클어진 사정과 소망에 관한 문제들은 하나님이 천만번 용서하고 지나갈 수 있으되 심정문제에 들어가서는 절대 용서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