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에 남아지는 주의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10권 PDF전문보기

최후에 남아지는 주의

역사가 이러한 곡절로 출발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원치 않는 방향으로 걸어 나왔고, 하늘도 우리 인간 이상 어려운 입장에서 원치 않는 길을 개척해 나오셨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고통스러운 모든 것들을 홀로 지시고 이 역사노정에서 길을 닦아 나오셨다는 사실을 우리는 몰라서는 안됩니다.

여러분, 그걸 생각해 봤어요? 백만장자의 아들이 자기의 호화찬란한 생활의 이면에 부모의 엄청난 고통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이 사회 환경에서 자기 자신의 근거를 명시(明示) 하지 못한 채 오늘에 만족하고 도취되어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몰랐던 사실을 온 역사를 걸어 놓고 밝혀야 할 때가 올 것이거늘,그 때가 끝날이요 대심판의 날인 것입니다.

오늘날 이 땅 위에는 수많은 민족과 국가가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수많은 국가 가운데 어떠한 국가를 찾아오실 것이뇨? 미국? 소련? 아닙니다. 민주주의? 아닙니다. 공산주의? 아닙니다. 최후에는 무슨 주의? 심정주의가 되어야 합니다. 죽어도 뜻 때문에 죽고, 그것을 본받다 죽고, 그것의 명령따라 죽고 산다는 이런 주의만이 최후에 남아지는 것입니다.

그 뜻, 그 주의는 하나님주의입니다. 이 하나님주의가 나의 주의요, 하나님의 뜻이 나의 뜻이라 할 수 있고, 그 주의와 나와 심정적으로 인연되어 그 인연을 세상의 어떠한 부귀영화와 바꿀 수 없고, 그 인연을 끊을래야 끊을 수 없게 될 때 최후의 종착점이 도래한다는 거예요.

그러한 한 때를 맞이해야 할 끝날의 우리들은 시야를 넓혀 세계를 냉철히 비판해야 됩니다. 이제까지 우리가 배워온 역사관(歷史觀)을 가지고는 안됩니다. 방향이 다릅니다. 역사가 무턱대고 흘러가는 것 같지만 흘러가는 데는 어떤 동기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위에서 혹은 먼 거리에서 이 세계를 돌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왜 그러느냐? 어떤 나라에 어떠한 주권자가 있다면 그 주권자가 스스로 망하고 싶어합니까? 어느 국가의 주권자도 망하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떤 주권자든지 주권을 갖고 세계를 제패하고 만민을 자기 손아귀에 넣고 통치하고 싶은 마음이 다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원하는 대로 되지 않습니다. 그렇잖아요? 그 주권자들은 그러한 민족과 국가를 바라고 있는데 죽음의 고비는 왜 오고 망함의 고비는 왜 옵니까? 소원하지 않았던 일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 역사노정의 비참사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자체가 동기와 해결점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 동기와 해결점은 다른 데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는 그 동기의 세계와 결과의 세계를 찾아 헤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동기와 결과는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인간으로 말미암은 동기가 아니라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동기가 되어야 하고, 인간으로 말미암은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결과가 되어야 합니다. 참이라 할진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고 끝나야 됩니다. 그렇게 되면 문제는 간단한데 거꿀잡이가 된 것입니다. 인간이 동기가 되었고 인간이 결과가 되었으니, 이 동기와 결과는 말할 수 없이 엉클어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인간의 동기와 결과를 제해 놓지 않고서는 새로운 동기와 결과를 옮겨 놓을 수 없습니다. 이것을 옮기기 위하여 하나님은 무한한 수고를 해 나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날 인간 세상에 죽음의 길이 있다 할진대 그 이상의 자리에 서야 되었고, 고통의 길이 있다 할진대 그보다 더 심한 고통의 길을 걸으셔야 했던 것입니다. 그래야 될 게 아니예요. 인간이 사망이 구렁텅이에 굴러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그보다 몇 배의 힘이 필요한 것입니다. 안 그래요? 굴러 들어가는 그 정도의 힘 가지고 되겠어요? 그보다 몇 배의 힘이 필요합니다. 이 땅을 살리기 위한 하늘의 뜻이 있다 할진대 부패하여 썩어진 곳을 해부해 도려내야 합니다. 이것을 위해 오늘 내가 당하는 고통보다 몇십 배, 몇백 배의 심한 고통을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가 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알게 하자는 것이 종교의 목적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섭리를 하신다 할진대 그 이유가 어디에 있느냐 하면, 이러한 사실을 알게 하여 구원섭리를 하시려는 하나님의 마음과 우리 인간의 마음이 한 방향이 되도록 하려는 데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