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과 슬픔의 두 세계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11권 PDF전문보기

기쁨과 슬픔의 두 세계

누가 여러분에게 `너는 누구냐?' 하고 물으면, `나는 이러이러한 사람이다' 라고 개인적인 입장에서 대답할 것입니다. `너는 무엇하는 사람이냐? 너는 무엇하러 왔느냐?' 필시 창조주 하나님도 이런 질문을 하실 것입니다. 여기에서 여러분이 자기의 사정과 심정을 온전히 하나님 앞에 맡길 수 있느냐가 문제입니다. 이 세계에 30억 인류가 살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창조주 앞에 자신있게 선 사람이 없었습니다. 창조주께서 과연 그렇다고 공인할 수 있는 절대적인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여기에 온 목적이 무엇이냐? 그것은 어떠한 환경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 인간의 근본 문제를 해명하고 절대자로부터 인정을 받고 확정을 받아 그 절대자 앞에 설 수 있기 위하여 온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행복하지 않으면 불행합니다. 외적, 곧 환경적으로 행복하다 할지라도 그 행복이 영계에까지 미쳐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절대자가 찾는 사람은 어떠한 사람이냐? 행복한 사람이 아니라 불행한 가운데 있을지라도 그 불행을 물리치고 진정한 행복을 만들어 가는 사람일 것입니다. 이런 내용을 토대로 구태어 오늘 드릴 말씀의 제목을 붙이자면 `두세계의 왕자가 되라' 는 것입니다. 슬픔과 기쁨, 이 두 세계의 왕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라면 어느 누구든지 두 세계의 왕자가 되기를 바라십니다. 오늘 이 세계가 바라고, 또한 창조주께서 바라는 사람은 두 세계를 책임지고 맡아서 승리하는 사람입니다. 인간에게는 양심이 있어 가지고 이를 기준으로 한 생활관과 인생관이 있다고 할 때 여기에는 양심의 근본이 되고 주체가 되는 존재가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입니다. 그분이 절대자라면 그분과 나는 어떠한 관계가 있는가? 더 나아가 가정과 사회와 국가와 세계와 절대자는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이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면 절대자가 찾고 있고, 절대자 앞에 아들딸로 설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이제까지 절대자는 한번도 기뻐해 본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인간이 기뻐해 보지 못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원인적인 주체가 기뻐해 보지 못했으니 결과적 대상인 우리 인간이 기쁠 수 없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어떤 위인도 참된 기쁨을 누려 보지 못한 채 선을 추구하며 악과 싸우다가 갔습니다. 오늘보다는 내일, 내일보다는 모레가 더 잘 되기를 바라는 것이 인간이 바라는 공통의 욕망이지만 욕망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인간이 기쁘기 위해서는 슬픔을 제거해야 합니다. 그러나 먼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기 전에는 기쁨이 있을 수 없습니다.

종교의 이념의 우주적이요 내세적입니다. 종교인의 이미 수천년 전부터 이것을 위해 싸워왔는데, 일반인은 이제야 유엔이니 세계정부니 하고 있습니다.

종교인은 언제나 역설적인 길을 걸어 나왔습니다. 현실의 비극을 퇴치시키기 위해서는 현실과 반대 방향으로 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현실과 똑같은 길을 가서는 안 됩니다.

참된 사람이란 선을 주장하는 사람이며, 어려운 사람과 슬픔을 같이 겪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종교인 가운데서 기쁨과 슬픔을 완전히 정복하였다고 하는 사람이 있느냐?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기쁨과 슬픔을 완전히 정복한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