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갈 길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15권 PDF전문보기

대한민국의 갈 길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오! 베드로는 수제자였다’라고 하는 데 베드로가 무슨 수제자입니까? 예수님이 다시 찾아가서 세워 주었으니 수제자지요. 그녀석 거 되먹었습니까? 스승이 생명을 걸고 담판 기도하는 그 자리에서 잠만 자고 있었고, 스승이 죽게 되었을 때 도망간 자가 무슨 수제자 자격이 있습니까? 불쌍한 예수님입니다. 그런 베드로를 다시 찾아가야 했던 처량한 예수님이에요. 예수님이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기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요 12 : 15)" 하고 물을 때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것을 주께서 아시나이다(요 12 : 15)" 하고 베드로가 대답하였으나, 세 번씩 되풀이해서 물을 때의 예수님의 복장은 뒤집어졌을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에게 세 고개가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민족을 대표한 아벨의 입장에서 아벨적인 가인 국가인 이스라엘을 수습하여 완전한 아벨적인 국가로 연결시켜야 했는데 그 사명을 완결짓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영육이 분단된 예수님의 한이 풀리기 전에는 재림역사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안식할 수 없어요. 예수님의 한이 풀리지 않았는데 어떻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편할 수 있겠습니까? 아들이 죽으려고 하는데 ‘너 잘한다! 좋구나’ 할 아버지가 어디 있겠습니까? 예수님의 이러한 곡절이 있는 한을 풀고 하나님의 한의 곡절을 풀기 전에는 이 한의 고개를 못 넘어가는 것입니다. 왜? 부모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들은 어떤 사명을 해야 하는가? 예수님에게 아벨적 입장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가인적인 국가로 세워서 하늘편 아벨 국가로 상속하여야 할 책임이 있었는데, 민족이 그를 따라 주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은 그 책임을 못하고 죽어 갔으니, 이 끝날의 우리들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되느냐? 다시 오시는 주님은 민족을 중심삼고 세계적인 뜻을 펴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지금 세계적인 발판을 닦아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형태는 민족적인 형이로되 뜻은 세계를 위하여 펴 나가야 하는 거예요. 세계를 소망하면서 민족까지 이끌고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탕감역사는 청산짓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므로 민족을 대신한 아벨적인 기준이 반드시 민족과 규합되어 나와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런 나라가 있어야 합니다. 내가 고맙게 생각하는 것은 한국이 옛날부터 하나님을 모셔 왔다는 것입니다. 이제 한국은 하나님을 찾지 않으면 나아갈 길이 없습니다. 정치적인 면, 경제적인 면, 어느 면이든 나아갈 길이 없는 것입니다. 남의 힘을 이용해서는 안 됩니다. 어느 나라든 남의 원조를 받아 가지고는 살 수 없는 것입니다. 원조를 해주는 것은 전부다 미끼입니다. 미끼예요. 그러므로 그런 것을 박차고 자력을 길러 놓아야지 그렇지 않으면 피 뿌리는 일이 벌어집니다.

여러분, 우리는 아벨적인 나라로서 아벨적인 생활을 해야 되겠습니다. 아벨적인 나라의 책임을 해야 되겠습니다. 복귀노정에 있어서 구원을 이루는 것이 우리가 기필코 달성해야 할 목적입니다. 그러므로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가인을 자연굴복시켜야 합니다. 민족적인 가인 국가를 아벨적인 국가 앞에 자연굴복시켜 가지고 그 국가를 자기네가 주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리며 ‘이 민족을 세계의 국가를 대표한 제물로 바치오니 받아 주시옵소서’ 해야 됩니다. 그래야 받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지는 않고, ‘아! 대한민국이 아벨적인 국가의 사명을 다했으니 하나님이시여, 이제 이 나라를 세계적인 대표 국가로 세워 주소서’ 한다면 하나님도 받을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천법이 그렇게 안 되어 있어요. 대한민국이 아벨적인 국가의 사명을 다해 가지고 하나님께 바칠 때는 ‘하나님, 이 국가를 세계를 위한 제물로 바치옵니다’ 해야 합니다. 세계 만방의 수많은 나라들이 바라보고 조공을 드리며, 머리 숙이도록 하기 위해 바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