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심인물들을 통해 섭리하신 하나님의 심정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15권 PDF전문보기

중심인물들을 통해 섭리하신 하나님의 심정

노아는 40일 홍수심판 위에서 승리의 터전을 마련했지만, 그 후 함의 실수로 말미암아 노아 가정을 중심한 하나님의 섭리는 깨져 나갔습니다.

온 세계를 심판해 버리고 남겨진 노아 가정에서, 다시금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 뒤넘이쳤던 그 가정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심정에, 분함과 원통함이 얼마나 사무치셨겠습니까? 그로 말미암아 다시 가야 할 복귀의 길을 더듬어 오신 하나님이시었던 것을 지금까지 인간들은 몰랐습니다. 또 노아 가정에서 섭리의 뜻이 저끄러짐으로 말미암아 노아 대신 아브라함을 세우기 위해 400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을 일구월심, 한마음으로 다시 복귀의 길을 더듬어 오신 하나님의 심정이 어떻다는 것을 오늘날 그 누구도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에 아브라함을 세워서 뜻을 해결지으려고 했지만 그의 제물 실수로 말미암아 연장되어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3대하나님이라는 슬픔 명사가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세워 뜻을 이루시려던 하나님께서 결과적으로 벌어진 슬픈 그 사정을 바라볼 때 얼마나 비참했겠습니까? 당장에 아브라함 일족을 때려 부수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소망의 천국을 이루어 나아가야 할 하나님의 애절한 심정이 남아 있는 연고로 또 참고 나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하나님의 심정을 아브라함 자신은 몰랐다는 것입니다. 야곱이 에서와의 싸움에 있어서 승리의 일로를 개척하고, 하란 땅 라반의 집에서 21년 동안 고역의 노정을 거쳐 나올 때, 이것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심정을 야곱은 몰랐다는 것입니다. 야곱은 자신이 억울하고 분한 사정에 몰리고 천대를 받고 밟힘을 당하고 원수의 시험을 받더라도, 또다시 가야 할 하나님의 복귀의 노정이 있었음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결국 야곱은 하나님과의 약속이 축복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약속한 그 뜻을 위해 하나의 믿음을 가지고 라반의 가정 환경 속에서 전부를 복귀시켜 가지고 승리하여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 가지 승리의 터전을 마련하여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받음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하나님께서 이 땅 위에 발붙일 수 있는 승리의 조건이 생겨난 것입니다. ‘이스라엘’이란 승리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을 중심삼고 애급 400년 고역기간을 거쳐 60만 대중을 이끌어 지상천국을 이루고자 하신 것이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에서 다 쓰러짐으로 말미암아, 다시 제2세를 수습하여 가나안 7족과 대결해 가지고, 그 승리한 터 위에 천국이념을 세우려 하셨습니다. 이것이 지지부진하여 가나안 땅을 거치고, 역대의 처량하고 비참한 역사노정을 거쳐서 예수 시대로 넘어왔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복귀섭리노정에 있어서 언제나 개인, 가정, 종족, 민족 시대를 한꺼번에 복귀시키기를 원하셨지만 그것을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적인 복귀의 책임과 가정적인 복귀의 책임은 야곱이 졌고, 민족적인 복귀의 책임은 모세가 졌고, 국가적인 복귀의 책임과 세계적인 복귀의 책임은 예수님이 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보내서 전체적인 책임을 맡기려고 했던 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셨던 뜻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점장이인 동방박사들이 별을 보고 찾아와서 예물을 줄 때, 온 예루살렘의 성민들이 소동을 벌여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은 오시는 메시아가 사람으로 태어날 줄 몰랐습니다. 교법사나 서기관, 어느 누가 버선 한 켤레라도 마련해 주었습니까? 예수님이 태어났다 해서 옷 한 가지 마련해서 찾아간 사람이 있었습니까? 불쌍한 자리에 오시면 안 되겠다고 초막 대신 거룩한 장소를 예비하고, 예물을 준비해서 예수님의 탄생을 맞이한 사람이 있었느냐 말입니다. 하늘의 때는 지나가지만 인간은 그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어찌하여 4천년 동안의 긴 역사를 통해서 준비해 온 이스라엘 민족이 선민의 한을 풀기 위해서 하나님이 보내주신 메시아를 알지 못했던고. 하나님께서 4천년 약속의 주인공으로 보내신 메시아를 어찌하여 이스라엘 민족은 한 사람도 몰랐느냐 하는 것입니다. 억울하고 분한 사실입니다. 어찌하여 그렇게 한 사람도 몰랐느냐는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