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하나님이심을 확실히 알아야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20권 PDF전문보기

슬픈 하나님이심을 확실히 알아야

예수님은 본연의 아담과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슬퍼하시던 하나님의 그 슬픔의 기준을 넘을 수 있는 내적인 심정을 갖고 자신의 명예와 영광이 일시에 수포로 돌아가는 죽음의 자리를 늠름하게 밟고 넘어 하나님을 부여안고, 죽어도 하나님을 모시고 살아도 하나님을 모시겠다는 결심을 했던 것입니다. 이 결심 때문에 하나님이 도리어 예수님을 위로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것으로 인해 천국의 터전이 이 땅 위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으로부터 위로받을 수 있는 터전 없이는 천주통일이 이뤄지지 않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 하나님이 슬프신 분이라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이 극장에 가서 영화 구경을 할 때라도 심각한 자리에 서서 그것이 남의 일같지 않고 내 일같이 느껴야 합니다. 그것이 신앙길을 가는 데 방해가 되는 원수같으니 어떤 악한 무리가 나올 때 그들을 잡아 치우겠다는 마음을 갖고 극장에 가면 죄가 안 됩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간다면 극장 아니라 그보다 더한 곳을 가도 괜찮습니다.

악당들이 사는 소굴이라도 사기꾼 모양을 해 가지고서라도 그들을 끌어올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간다면, 또한 원수를 한칼에 전부 쳐 버리겠다는 결의를 갖고 나선다면 하나님의 용자로 세워집니다. 그런 사람은 천하 어디를 가든 화제의 인물이 됩니다. 그럴 것 같아요, 안 그럴 것 같아요? 「그럴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얼마나 그럴 것 같아요? 여러분들 생각해 보세요. 잘라 죽여버리고 싶은데 그럴 수 있어요? 생각하면 그럴 것 같은데 하겠지만 그 자리는 심각한 자리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람도 심각합니다. 여러분들 모르겠지만 생명을 내 놓고 덤벼드는 것입니다. 생명을 뿌리지 않고는 생명의 씨를 거둘 수 없는 것입니다. 심은 대로 거둔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심정을 가지고 최상의 길로 인류를 찾아 오셨기 때문에 그런 심정을 가진 사람들이 지금까지 역사를 발전시키는 데 도움이 되어 왔던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하나님편입니다.

하나님은 다 잃어버리고 슬퍼하시는 분이십니다. 인간이 자연적으로 발생한 병이 나서 죽었다면 그래도 괜찮겠는데, `따먹으면 죽는다'고 경고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경망스럽게 따먹었다는 것입니다. 이걸 볼 때 얼마나 얄미웠겠습니까? 그것을 따먹으면 죽는다고 했습니다. 반드시 죽는다고 했습니다. 이 말을 귀에 불어넣어 주었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이 좋다고 따먹었던 것입니다. 인간은 하지 말라면 더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통일교회 나오지 말라 하면 더 나옵니다. 나와라 나와라 하면 안나오는지 모르겠지만 나오지 말라고 몸둥이로 후려 갈기면 새벽같이 들어와 앉아 있을 것입니다. 몸둥이 들고 나오시는 선생님은 몇 시에 나오시겠나 하면서 말입니다. 이런 청개구리 같은 성격 때문에 일이 저끄러진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보시고 `잘했구만. 뭐 그럴 수도 있지' 하시겠어요? 그럴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멍하니 낭떠러지로 갔다가는 죽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송장이 되는 거예요.

예수님을 믿으면 무슨 법도를 세울 수 있느냐? 사랑의 법도를 세울 수 있습니다. 만일 동네방네에서 전부 다 반대하고 부모 형제가 반대하는데도 죽자 살자 하면서 모든 반대를 물리치고 백년가약을 맺고 약혼식을 해 놓은 신랑신부가 있는데, 그 신부가 신랑되는 사람에게 `다른 남자한테 잠시만 시집갔다 올 테니 기다려 주세요' 하면 어떻게 하겠어요? 그 말이 통하겠어요, 안 통하겠어요? 절대로 안 통합니다. 하나님이 이런 경우를 당하신 것입니다. 그런 짓을 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이 다시 만나 주시겠어요? 원수입니다. 흉물단지예요. 세상에 그보다 못한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천하를 둘러보아도 그보다 못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너희가 사랑의 법도를 몰라서 그렇게 하였으니 이제는 안 그러면 되지 않겠느냐'고 하시겠어요? 그것이 통할 수 있겠어요? 그러실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사람 하나 죽인 것은 몇백 번 몇만 번이라도 용서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앞에 세워질 수 있는 단 하나밖에 없는 상대적인 중심존재가 사랑의 법도를 파탄시켰으니 그것을 어디 가서 찾을 것이냐? 이것을 찾아 세우기 위해 예수님의 사랑의 종교를 가지고 오신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에서 사랑을 부르짖고 있는 것은 바로 그 이유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무슨 선악과를 따먹고 죽었다고요? 야밤중에 다니는 장님보다도 더 어둡군요. 그렇게 믿고 가면 얼마나 수월하겠습니까? 그렇다면 통일교회 문선생님이 얼마나 편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