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종교에 대한 기독교의 우월성과 그 한계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27권 PDF전문보기

타종교에 대한 기독교의 우월성과 그 한계

지금까지의 인류역사 가운데 수많은 종교가 있었고 수많은 종교인들이 있었지만, 그럴 수 있는 자리에서 최선의 결과로 맺어진 한 순간을 맞이한 사람이 있었습니까? 누가 그런 순간을 맞이했습니까?

그러면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는 말을 한 석가가 그런 순간을 맞이 했어요? 그렇다면 과연 석가가 천상의 본 뜻을 대신한 입장에서, 하나님의 아들의 입장에서, 하나님이 바라던 최후의 선의 자리, 즉 온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자리에서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었던가? 이러한 문제를 중심삼고 불교를 보게 되면 거기에는 진정한 의미의 절대적인 신의 존재성이라는 것이 애매하다는 것입니다. 더우기나 하나님이 있다면 그 하나님도 마음을 가졌을 것임에 틀림없는데 불교에는 하나님의 내정적인 심정을 통할 수 있는 내용이 없습니다.

이것을 볼 때, 석가가 한 말도 먼 자리에서, 개인적인 목적을 추구하는 자리에서 그 목적 범위를 중심삼고 한 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공자, 마호메트, 예수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분들이 과연 하나님이 찾아 나오는 결과적인 입장에서 최후의 순간을 장식할 수 있는 선의 실체로 왔던 사람들이냐 할 때에 여기에도 차이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주장한 내용이 선하다지만 같은 자리에서 주장한 것이 아닙니다. 지역이 다르고, 역사적 배경이 다르고, 민족적인 환경이 다른 가운데서 태어났기 때문에 그들이 제창하는 것도 민족적인 환경을 넘어설 수 없었습니다. 그러기에 그들이 처한 위치도 전부 다 같지 않고, 또한 같은 위치에서 선한 순간을 맞은 것이 아닙니다. 시대의 차이가 있고 환경의 인연을 벗어날 수가 없기 때문에 그들의 위치에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가운데서 누가 그나마 최선의 자리를 역사에 남기었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에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고, 자신을 독생자라 부르고, 하나님을 중심삼고 자기는 신랑이고 인류는 신부라 하고, 하나님을 중심삼고 자기는 형이고 인류는 동생이라고 할 수 있는 내용을 가지고 내정적인 분야를 주장한 종교의 창시자는 예수 이외에는 없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그래도 심정적인 내용을 가지고 역사과정에서 하나님께서 찾아 나오시던 본연의 인간상을 추구해 나왔고, 역사적으로 인류가 추구해 나온 최후의 순간을 장식할 수 있는 하나의 실체를 세워서, 하나님의 공인을 받고 인류를 대표할 수 있는 귀일점을 가진 종교는 기독교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기독교는 하나님의 소원, 인류가 추구하는 소망의 목적을 달성시켜서 평화의 기점을 해결해야 할 것이요, 그러한 하나님의 소망이 있는 한 역사는 기독교를 중심삼고 발전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에 기독교가 명실공히 세계적인 종교가 된 것은, 내적인 면에 있어서 인류역사상의 최대의 선을 중심삼고, 완전한 그 기준에는 못 미쳤다 하더라도 거기에 가까운 입장에서 출발한 것이 틀림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전부를 귀결지어 최후의 선한 생활을 장식했느냐 하면 그렇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의인은 없나니 한 사람도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또 예수님 자신도 소원을 다 이루었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십자가에 달려 운명하는 순간에 `다 이루었다'고 한 그 말은, 예수님 자신의 수난의 노정에 있어서 끝을 예고하는 것이지 수난을 통하여 찾아야 할 이념의 세계를 다 이루었다고 한 말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는 지금까지 수난의 길을 걸어오고 있는 것입니다. 아직도 수난의 역사를 넘고 넘어 세계적으로 걸어야 할 개척의 노정이 남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다 이루었다'고 한 말은 자기 당대의 수난의 길에서 승리를 표방하는 말이지, 그것이 세계 전체나 미래에까지 승리의 터전을 닦았다는 말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신랑이요 너희는 신부라'는 미래의 소원을 남기고 가셨기 때문에 다시 오셔야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 소원이 이루어질 수 있는 기준, 그 소원이 열매 맺어야 할 그 시대가 미래의 역사과정에 남아 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러한 미래의 한 때가 인류에게 접근해 올 것입니다. 혹 현세의 우리 30억 인류에게 찾아올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또한 여러분의 운명을 중심삼고 어떤 각도를 맞추고 방향을 갖추어 여러분을 향하여 올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일생에 그것이 찾아와 교차되는 순간, 그 순간을 어떻게 해결짓느냐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