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오시는 주님이 가시는 길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29권 PDF전문보기

다시 오시는 주님이 가시는 길

오늘날 통일교회에 있어서 선생님을 중심삼고 볼 때 선생님도 일신의 기준에서는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선생님이 예수님과 같은 입장에서 전체적인 책임을 짊어졌으면 예수님이 태어날 때 동방박사를 보내 주신 것과 마찬가지로 선생님에게도 보내져야 할 게 아닙니까? 요셉과 같은 가정에 보내져야 되고 세례 요한과 같은 사람이 역시 왔어야 될 게 아닙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예수님을 배신했던 역사적인 그 후손들을 통한 환경에서 복귀섭리를 하실 수 없는 것입니다. 그보다 더 비참한 환경에서 섭리하시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다시 오시는 주님이 가시는 길은 예수님보다 더 비참한 운명에 처해야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나는 그 누구로부터도 협조를 받지 않고 이런 길을 고독단신으로 걸어왔습니다. 일대일의 입장을 갖추지 않고는 복귀의 중심을 결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중심이 결정되어야 비로소 지상에 상대적 여건을 세울 수 있는 것입니다. 중심이 결정되지 않고는 상대적 환경이라든가 혹은 국가라든가 세계라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 통일교회에서 배우고 있는 복귀원리의 내용을 중심삼고 볼 때, 이것은 샘터에서 흘러나온 물줄기와 물줄기가 합하여져 큰 강을 이루어 가지고 대해로 들어가는 것과 같은 자연적인 흐름이 아니라 그 강물이 거꾸로 올라가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대해로부터 거꾸로 올라가서 샘줄기를 찾아가는 것이 복귀의 길입니다.

그러면 오시는 주님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 누구보다도 포부와 희망이 세계적이어야 합니다. 세계적인 입장에 서고 누구보다도 비참한 자리에 서서 최하의 입장에 있는 사람들을 대표할 수 있는 절망의 자리에까지 가야 됩니다. 다시 말하면 크다면 최고로 큰 자리요, 작다면 지극히 작은 자리까지 거치지 않고는 복귀의 사연을 통틀어 가지고 뒤집어 놓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원리의 배후에는 이런 곡절이 많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타락으로 인하여 갖게 된 슬픔을 풀 수 있는 한 때, 복귀의 한을 풀 수 있는 한때를 맞지 못하셨습니다. 아벨을 찾아왔지만 그 소망을 저버리게 하던 한때, 3차에 있어서 노아를 중심삼고 복귀하려던 그 한때, 아브라함을 중심삼고 또다시 수습하려던 그 한때, 예수님을 중심삼고 전체를 수습하기 위해 섭리하셨지만 하나님은 복귀의 그 한때를 맞이하지 못하셨습니다. 이것을 맞이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지금까지 수많은 선지선열들이 죽음길을 가리지 않고 수난길에서 피의 대가를 치르고 영계에 가서까지 해원성사의 한날을 향하여 수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무리를 바라볼 적마다 하나님께서는 기쁨으로 대할 수 없는 비통한 입장에서 2천년의 역사를 지내 오셨습니다. 이런 것을 생각해 볼 때, 복귀의 종교는 재림사상을 중심삼고 어느 특정한 나라나 민족을 세울 때까지 그 배후에 있어서 그 누구도 모르는 수난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수난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