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인에게 모든 것을 주어야 할 아벨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30권 PDF전문보기

가인에게 모든 것을 주어야 할 아벨

오늘 말씀의 제목이 `복귀의 기점'인데, 이 `복귀의 기점'이라는 것이 무엇이냐? 이스라엘이 아무리 세계를 복귀할 수 있는 국가가 되었다 하더라도 그 국가만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원리를 통해서 가인 아벨의 실체 복귀시대, 즉 실체기대라는 것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찾아진 이스라엘 국가를 중심삼아 가지고 가인적인 국가, 즉 천사장형 국가를 굴복시켜야 됩니다. 그것은 무력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벨이 형인 가인에 의해 죽었기 때문에 죽는 자리, 즉 맞는 자리에 들어가서 죽지 않고 살아서 그들을 굴복시킬 수 있는 인연을 갖추지 않고는 복귀의 기점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야곱은 21년 동안 수고한 결과로 찾아진 자기의 종이나 모든 재산을 그의 형인 에서 앞에 바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야곱은 `내생명과 재산은 형님에게 속한 것이다'라고 하면서, `나는 형님의 종입니다'라고 하면서 자기의 모든 재물을 형인 에서에게 바치자 에서는 야곱의 모든 제물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가 예물을 받은 것은 야곱을 받아들이는 것이요, 야곱을 받아들이는 것은 야곱가정을 받아들이는 것이요, 또한 가정을 받아들이는 것은 이스라엘 민족을 받아들이는 것이요, 이스라엘 민족을 받아들이는 결과는 이스라엘 나라를 받아들일 수 있다는 표시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가인 앞에 모두 주었다가 다시 찾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귀의 원칙입니다. 하나님과 사탄의 입장은 아벨과 가인의 입장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지금까지 사탄에게 다 주었습니다. 개인을 주었고, 가정을 주었고, 종족을 주었고, 민족을 주었고, 국가를 주었고, 세계를 주었습니다. 다 주었습니다. `세계를 네 마음대로 해라'할 수 있는 입장까지 다 주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까지도 부정할 수 있는, 하나님은 죽었다 할 수 있는 자리까지 주었습니다. 다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완전히 부정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 역사상에 나타났다는 사실은 무엇이냐? 완전히 부정당한 그 배후에는 완전한 긍정의 출현이 내재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역적과 충신의 입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충신이 충신으로서의 권위를 갖추기 위해서는 완전히 부정당하는 자리에 서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역사과정에 드러날 수 있는 충신의 대열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도 그와 같은 운명길을 걸어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완전히 부정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누구한테? 사탄세계 앞에 부정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부정당하는 것은 무엇이냐? 전체를 넘겨 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원수시 하거나 치게 되면 깨져 나가는 것입니다. 돌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가지고 기도한 것이 무엇이냐?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나이다. (눅23:34)”라고 하셨습니다. 그 `용서하시옵소서'하는 자리는 자기 자신의 모든 소유를 원수에게 넘겨 주는 자리입니다. 그건 싫다 하더라도 넘어가게 되어 있다는 겁니다.

하늘로부터 가져온 귀한 모든 것, 4천년 역사를 통하여 희생의 대가를 치러 가지고 찾아 세운 이스라엘 나라가 당장 넘어가는 것을 바라보고 있는 예수님은 분하고 원통함이 극에 달했지만, 여기에서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라고 한 것입니다. 이것은 전부다 원수 앞에 넘겨 주고 또다시 찾을 수 있는 하나의 길을 모색하는 작전이었다는 것입니다. 만일 그들의 죄를 용서하지 않으면 사탄에게 넘어가 물건이 돌아올 길이 없습니다. 그들이 용서받을 수 있는 길을 터놓지 않고는 그때까지 수고하여 찾아 세운 이스라엘 나라를 완전히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복귀의 기점이라는 것을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비참한 자리에 있었지만 도리어 원수를 위해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은 두 세계의 인연을 완전히 굴복시킬 수 있는 하나의 동기가 되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본연의 권위를 잃어버리게 했던 원수를 사랑할 수 없는 자리에 있는 하나님이시지만 사랑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은 것이요, 또 하나는 망할 수 밖에 없는 원수들이 소생할 수 있는 길을 터놓은 것입니다. 여기에서부터 기독교가 발전해 왔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