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극이 되는 생활을 하라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30권 PDF전문보기

자극이 되는 생활을 하라

일반 교역자들의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지역이나 지구에서 강의를 하게 되면 식구들이 `오! 지역장이 원리강의 하는 구만, 그 말 끝난 다음에는 이 말이 나오지' 하고 전부다 알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 3년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강의만 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과거에는 그러한 방법으로 강의를 했지만, 지금은 거기에 가지를 달아 새로운 해설과 내용을 첨가해서 강의할 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내용면에서는 심령적 발전을 하는 데 필요한 체험담을 이야기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때의 분위기에 맞추어 필요한 강의를 해야 된다는 겁니다. 여러분이 3년 동안 목회를 했으면 자극을 줄 수 있는 이야기를 한번이라도 해주어야 식구들에게 보탬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실감을 느끼지 못한 식구는 주일날 예배에 참석을 잘 안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여러 분들이 지금까지 강의를 너무나 소홀히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제부터라도 새로운 것을 제시해야 합니다. 어떻게 해서라도 자극을 주어야 합니다. 기도를 해서라도 보충해야 돼요. 그래도 안 되면 생명을 걸고서라도 담판을 지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길을 가더라도 새로운 것을 찾는 마음을 가지고 가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교회에 간다 하더라도 그냥 가지 말라는 거예요. 교회에 갈 때에도 항상 새로운 입장과 환경에 접한다는 마음을 가지고 가야 새로운 것이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교회에 가는 데도 직선 코스로만 가는 것이 아니라 돌아가기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남쪽으로 가야 하지만 북쪽으로 가 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새로운 길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또 그런 실감이 안 나거든 집안 살림살이를 전부다 바꾸어 보라는 겁니다. 수개월이 되어도 그냥 그대로 놔두지 말라는 겁니다. 거꾸로 뒤바꾸어 보라는 겁니다. 그러면 생각이 달라지는 겁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기도를 할 때도 단 앞에서 기도를 하는 경우와 맨 뒤편에서 기도를 하는 경우 그 느낌이 각각 다릅니다. 청중들 가운데에서 기도를 할 경우에 또 느낌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환경적인 변화를 어떻게 모색하느냐? 이것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신비스러운 기도를 해보면 보통 기도와 백방으로 다르다는 거예요. 동쪽과 서쪽, 남쪽, 북쪽, 중앙이 각각 다르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감정을 체휼하려면 생활환경을 변경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의 생활 속에서 심정을 변화시키려면 환경 여건을 개조해 나가는 방법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회사에 다니는 남편이 있다면, 남편이 출퇴근할 때마다 항상 같은 식으로 무의미하게 대해서는 재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극이라는 것은 간단히 말하면 웃고 우는 것입니다. 극은 웃기고 울리는 것인데, 왜 그것을 좋아하며 돈까지 주고 가서 보느냐? 그것을 보고 웃긴 웃지만 각도가 다른 입장에서 웃는다는 것입니다. 또한 우는 것도 다른 각도에서 우는 것입니다. 이처럼 색다른 각도에서 볼 수 있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왜 돈을 주면서 보러 가느냐? 그것은 다른 각도에서 새로운 것을 느낄 수 있고, 새로운 분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자극을 받고 소득을 얻기 때문에 본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단에 서서 대중을 지도하는 입장에 서게 되면, 모든 것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기도를 할 때는 문화적인 기도도 해야 되고, 지적인 기도도 해야 됩니다. 어떤 때는 엄숙한 기도를 하다가도 청산유수와 같은 기도를 해야 되고, 또 고통 속에서 신음하는 것처럼 어떤 골짜기에 들어가 더듬거리며 한걸음 한걸음 찾아 나가는 그러한 입장에서도 기도를 해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실로 여러가지 사정에 접해 가면서 새로운 심정적인 내용을 확정시켜 나가야 합니다. 이것이 교역자 생활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이러한 생활이 습관화되면 한 제목만 가지고도 사방으로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여러 방면으로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동쪽에서 서쪽을 바라보면 그 풍경이 다르게 보입니다. 햇빛이 비칠 때 그 광선의 차이에 따라 또는 명암의 정도에 따라 풍경이 다르게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감정을 느끼며 그에 따라 움직이지 않으면 하나님이 동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잘난 사람만 대해 가지고 얘기하는 그 시간만 좋아할 것이 아니라, 지극히 못난 사람을 대하면서도 좋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못난 사람을 대하더라도 같이 뚝배기에다 설렁탕을 넣어 먹을 수 있어야 하며, 그 옆에 똥통이 있더라도 냄새를 맡으면서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했을 때 하나님이 같이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가 최고의 경지요 신비경이라 할 수 있습니다. 거기에 평면적인 내용이 아닌 입체적인 내용을 가하게 되면 폭발적인 충격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러분이 언제나 알아야 할 것은 새것이 아니면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새것이 절대로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설교를 할 때, 그 제목으로 옛날에 한 번 했다는 것을 식구들이 알면 기분 나쁘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원리강의를 할 때도 옛날식으로 하면 기분 나쁘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람이 춘하추동 사계절에 따라 변화를 느끼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아침이라고 해서 기분이 항상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무런 걱정이 없는데도 유난히 우울한 날이 있다는 것입니다. 아침 햇살도 밝고 상쾌한 날씨인데도 불구하고 자기 스스로 우울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해결되느냐? 갑자기 이것을 변동시키는 자극적인 것이 없거든 더 우울한 자리로 찾아 들어가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반대적일 수 있는 새로운 자극을 준다든가, 혹은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직접적인 새로운 자극을 일으켜서 보충해 나가야 합니다. 여러분이 해결 방안을 세워 가지고 하루하루의 생활을 조절해 나가지 못하면, 앞으로 뭇 인간들의 심령을 지도할 수 없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