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역사적인 소원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46권 PDF전문보기

하나님의 역사적인 소원

양자들을 모아 가지고 사랑하는 것은, 아들과 더불어 죽고 살고, 목숨을 걸고 하나되어 형제와 같이 지낼 수 있는 한 사람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양자를 택했던 거예요. 그가 가인입니다. 가인과 아벨은 하나 되어야 하지요?

지금까지는 남자 홀로 도의 길을 가다가 죽어간 사람이 많았지요? 혼자서 하나님을 중심삼고 일생 동안 독신생활하는 것을 하나님이 좋아했겠어요? 그것이 좋은 것이 아닙니다. 할 수 없으니까 한 거예요. 하나님이 좋아할 수 있으려면, 하나의 남자와 하나의 여자를 중심삼고 제일 좋을 수 있는 자리에서 천지의 모든 존재물들이 기쁨과 소망으로 머리 숙일 수 있는 그런 자리를 맞이해야 합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이 '지극히 선한지라, 지극히 좋은지라' 하는 거예요. 아담을 지어 놓고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아서, 해와를 지어 쌍을 이루어 놓고서야 '지극히 좋은지라' 했지요? 그거예요. 그 자리까지 나가야 됩니다.

일대에 그러한 기준을 완결지을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하나님의 역사적인 소원이 아니겠습니까? 수십 수만 사람이 동원되어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고, 한 사람이 전체적으로 종의 종으로서도, 종으로서도, 양자로서도, 아들로서도, 혹은 승리한 참남성으로서도, 그 다음에 상대를 가질 수 있는 기준을 갖추는 데 있어서도, 어디 흠잡을 데가 없는 그런 한 사람을 만나게 되는 것이 하나님이 제일 기뻐하실 수 있는 일이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틀림없지요? 그래서 통일원리가 그것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통일원리는 무엇을 가르쳐 주느냐? 종의 종이 되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다르다는 거예요. 우리 통일교회의 바탕이 다른 것이 무엇이냐? 과거 몇천 년 동안은 종 중의 종이 되라고 두드려 팼습니다. 그 다음에는 종살이를 하는데 몇천 년 동안 믿고 나왔고, 그 다음에는 양자의 일을 해나왔습니다. 지금까지 기독교는 양자 되기를 바라고 나오는 것이지 양자가 된 것이 아니라구요. 양자가 되기 위해서 몇천 년 동안 희생하면서, 죽자 사자, 죽는다 산다 소문을 내면서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 하나님은 한 분인데, 하나님은 종의 종의 마음을 느꼈고, 종의 고통을 느꼈으며, 양자의 개척자로서의 고통을 느꼈고, 혹은 아들이 개척노정에서 느낀 것이나 참부모가 느꼈던 것을 다 느꼈습니다. 느낀 그 주체는 한 분이신데 그가 대했던 사람은 수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생각해 보라구요. 종의 종을 대해서는 종의 종의 마음을 가지고 속닥속닥하고, 그 다음에는 종을 대해서는 종의 마음을 가지고…. 아까 말했듯이 종의 종이 좋으냐, 종이 좋으냐 할 때 하나님도 종의 종을 계속 대하기는 지긋지긋하다는 것입니다. 또 종으로 대했으면, 최후에 결정짓기 위해서 종을 한번 대해 주었으면, 그 다음엔 양자를 대하고 싶지 또 종을 대하고 싶겠어요? 그럴 것 아니예요? 올라가는 거예요.

그런데 여기서 종의 종이 하나님께 '아이고 나 대해 주소' 하면 하나님이 어떻겠어요? 그러니까 하나님은 영원히 사랑했다고 할 수 있는 종의 종의 대표자, 종의 대표자, 양자로서의 대표자, 아들로서의 대표자, 참아버지로서의 대표자가 될 수 있는 한 사람을 보고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결국 종을 보고 좋아하는 것이 되고, 양자를 보고 좋아하는 것이 되고, 아들을 보고 좋아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은 그러한 대표적인 사람을 찾으시는 것입니다. 알겠지요? 하나님이 그 사람과 좋아하게 되면 그것은 종들과 좋아하는 것이 되는 것이요, 양자와 좋아하는 것이 되는 것이요, 아들과 좋아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최고의 승리자를 찾으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적 역사를 횡적으로 탕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구약시대는 물질의 시대, 신약시대는 아들의 시대, 성약시대는 부모의 시대입니다. 그렇지요? 이것은 나를 중심삼은 가정 안에 다 들어갑니다. 가정에는 부모가 들어가고, 아들도 들어가고, 만물도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소생은 물질, 장성은 자녀, 완성은 부부지요? 역사적으로 실패한 복귀의 심정을 거쳐 가지고 이것을 '한꺼번에 완전히 당신 앞에 평면적으로 드리나이다' 할 수 있는 승리의 아들딸을 하나님은 찾아 나오신 것입니다. 결론이 그렇다구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그 말이 무슨 말이냐? 여러분은 여러분의 소유가 있어요, 없어요? 여러분 축복받았어요, 안 받았어요? 부처가 됐지요? 여러분도 이 부모와 같이 부모의 자격이 있어요, 없어요? 여러분의 아들딸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여러분들에게 아들딸이 있지 않아요? 그 다음에 여러분에게 만물이 있어요, 없어요?「없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입고 있는 것은 다 뭐예요? 여러분이 신고 있는 것이 뭐예요? (웃음) 그런 것이 다 자기 것이지요? 자, 여러분에게 만물이 있어요, 없어요?「없습니다」 그런 거라구요. 틀림없다구요. 똑똑히 알라구요. 만물이 있습니다. 가정을 중심삼고 부모와 아들딸과 만물이 있다는 거예요. 이것이 뭐냐 하면 이것 때문에 하나님이 아담 해와에게 에덴 동산에 천지만물을 지어 주신 것입니다. 이것을 찾기 위해서 6천년 동안 종이니 양자니 하는 것들을 세워서 섭리해 나온 거예요.

구약시대는 종의 종의 시대입니다. 종의 종은 물건과 마찬가지예요. 물건만도 못한 것으로 취급하는 것입니다. 신약시대는 양자의 시대입니다. 아들을 세워 가지고 역사하던 때, 예수 시대라구요. 그렇지요? 성약시대는 부모가 고생하는 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물을 바치는 데는 구약시대에는 물질로 제물을 바치고, 신약시대에는 아들로 제물을 바치고, 성약시대는 부모를 제물로 바치는 거예요. 그렇지요? 성약시대는 부모가 탕감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참부모의 공로로서…. 그렇잖아요? 김일성의 공로보다 참부모의 공로가 작겠나, 크겠나? (웃음) 감사하는 것도 그 보다 더 감사해야 되겠어요. 더 못하게 감사해야 되겠어요? 못해야 되겠어요? 「더 해야 되겠습니다」 알긴 다 잘 아는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