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양심작용의 주체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56권 PDF전문보기

하나님이 양심작용의 주체

우리 인간에게는 부정할래야 부정 할 수 없는 양심이란 것이 있습니다. 양심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들은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지만, 만일 하나님이 있다는 입장에서 보게 될 때 그 하나님은 창조주요, 그 하나님이 지은 인간은 피조물인데 그런 피조물과 창조주가 합할 수 없는, 하나의 공동목적을 제시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있어야 됩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지었다면 그 지어진 인간이 하나님이 바라는 창조의 목적과 일치될 수 있는 그 점에 도달할 수 있는 어떤 힘의 작용체를 만들지 않고는 인간을 지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절대자이시니 절대자인 하나님과 피조물인 우리 인간이 합할 수 있는 제1의 기반, 접촉할 수 있는 제1의 터전이 반드시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인간을 대해서 그 목적하는 결과에 도달할 수 있게끔 우리 인간 가운데 작용할 수 있는 그 무엇을 존속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없다면 하나님이 바라는 제 3의 목적 기준 앞에 도달해서 하나님도 기쁘고 인간도 좋아할 수 있는 자리를 발견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인 것입니다. 절대적인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지을 때, 인간을 창조하던 창조목적의 기준과 지음받은 우리 인간으로서 가야 할 목적의 기준은 서로 다를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반드시 하나될 수 있는 데에서 하나님도 기뻐할 수 있는 것이요, 인간도 기뻐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인간 가운데 절대적인 하나님을 대신해서 그것을 찾아 올라갈 수 있는 무슨 작용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작용이 없게 되면 도달할 수 없으니 그것을 바라는 힘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나를 끌고, 나를 자극시켜 가지고 끌어내어 밀어주는 힘이 있어야 됩니다. 그 힘이 무엇이냐 하면 여러분이 부정할 수 없는 양심이라는 것입니다.

양심이 작용하는 데는 반드시 어떻게 작용하느냐 하면 높아지기를 바라고 작용하는 것입니다. 양심은 지금 현재의 자기보다 나아져라, 나아져라 하고 재촉하는 것입니다. 이 작용만은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양심이 현재의 자기보다도 높아지라고 촉구하지, 현재의 자기보다도 낮아지라고 자기 자신 앞에 촉구하는 그런 작용은 하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보다도 내일, 내일보다도 모레가 보다 나을 수 있게…. 금년보다도 내년, 혹은 10대보다도 20대, 20대보다도 30대, 가면 갈수록 더 높고 더 가치적인 자기를 형성하라고 추구시키는 그 힘이 양심작용인 것입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잘 아는 겁니다.

그러면 이게 왜 이렇게 작용하느냐? 아까 말하기를, 존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힘이 있어야 되고, 힘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작용이 있어야 되고, 작용을 하기 위해서는 주체와 대상이 있어야 된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존재를 위한 하나의 원칙입니다. 이렇게 보게 될 때 우리 양심은 틀림없이 작용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양심은 어릴 때부터 늙어 죽을 때까지 일생 동안 작용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양심은 혼자 작용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양심 작용할 수 있는 다른 상대적 존재가 있느냐? 이것을 지금까지 인간들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작용하는 데는 반드시 주체와 대상 관계가 형성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작용이 안 됩니다. 전기를 보면 플러스 마이너스가 있는데, 그것이 서로 연결되지 않으면 결코 작용하지 않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에게는 양심이 있다는 것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고, 양심이 작용을 계속하고 있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양심이 작용을 계속하는 데는 반드시 주체와 대상의 관계가 있어야 하는데 그 주체와 대상의 관계를 확실히 모르고 있습니다. 양심이 있는 것을 알고 있는데…. 작용하고 있는 그 무엇, 주체가 되는 그 무엇이 없어 가지고는 작용을 계속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양심 자체를 두고 그 양심이 주체냐 대상이냐 하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우리 인간의 양심은 어디까지나 대상적인 존재지 주체적인 존재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작용의 원칙을 따라 찾아보게 될 때, 반드시 작용하지 않을 수 없는 하나의 주체가 있어야 됩니다. 그 주체와 대상은 손해나는, 서로가 마이너스되는 것을 바라보고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플러스될 수 있는, 보다 나을 수 있는 것을 향해서 작용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의 양심작용은 보다 나을 수 있는 것, 보다 큰 것, 가치적인 것, 보다 세계적인 것을 향해서 작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다 플러스될 수 있는 그 길을 찾아 나서는 양심이 있는 것을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양심작용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주체와 대상 관계의 공동 목적점을 바라보고 작용한다고 결론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