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사랑의 길을 가르쳐 주는 것이 메시아사상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60권 PDF전문보기

하늘의 사랑의 길을 가르쳐 주는 것이 메시아사상

지금 우리 통일교회는 무엇을 하자는 것이냐? 세계를 사랑하자는 거라구요. 세계를 사랑하는 방법을 모르지요. 어떻게 사랑할 것이냐? 얘기해 보라구. 여러분은 '사랑한다면 인간적인 사랑이 아니라 하늘의 사랑을 하고 싶다. 원리를 중심삼은 하늘의 사랑을 하고 싶다'고 할 거예요. 그러면 하늘의 사랑을 어떻게 하느냐? 문제가 그거라구요. 어떻게 하느냐? 사랑을 하고 싶지만 어떻게 하느냐? 어떻게 하느냐 하는 길, 사랑의 세계로 갈 길을 개척해 주기 위한 것이 메시아의 사명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길을 가르쳐 주기 위한 것이 메시아의 사명입니다. 이 똥 구더기같은 만민을 구해서 뭘해요? 하나님 앞에 사랑의 대상이 안 되는 그런 사람들이 됐다간 영계에 가서 전부 다 뜯어먹히게요. 도둑놈 같은 것은 전부 다 싹 뜯어 버려야 돼요.

서로서로 사랑하기 위해서 미치고, 미치고도 기뻐하고 미쳤어도 미친 것으로 보지 않고 더 좋아할 수 있는 사랑의 길을 닦는 것이 메시아의 과업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 있어서 어떻게 사랑하느냐 하는 것을, 어떻게 사랑하는 그 길을…. 이렇게 사랑해야 한다 하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 오시는 분이 메시아입니다. 그 메시아의 전통적 사상을 본받아 가지고 그렇게 따라가게 되면 그 나라에 가는 것이요. 그렇게 못 따라가게 되면 그 나라에 못 가는 것입니다. 간단하다구요.

여러분은 마음도 없는 곳에 가라면 가겠어요? 선생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선생님이 가는 곳에 가고 싶지, 사랑도 안 하는데 가고 싶겠어요? 가고 싶어요. 안 가고 싶어요? 「안 가고 싶습니다」 안 가고 싶다는 거예요. 또, 선생님도 그렇다구요. 사랑하려고 하는데 상대를 안 대해 주면 안 될 책임이 있다구요. 알겠어요? 안 대해 주면 안 될 책임이 있다 이거예요. 여러분도 그렇다구요.

여기에 한 사내가 있고, 귀족의 딸하고 종의 딸이 있다고 합시다. 귀족의 딸은 그 사내에 대해 관심도 안 가지고 그 사내는 많은 사내 중의 한 사람이다 이렇게 본다구요. 그렇지만 종과 딸은 많은 남자 중의 남자다, 이래 가지고 아침 저녁 할 것 없이 그야 알아주든 몰라주든 정성을 들이는 거예요. 그렇게 정성들이는 것이 알려지게 될 때는 그것이 통하는 날에는 그 남자가 어디로 말려들어 가느냐? 귀족의 딸이 암만 허우대가 좋고 외면적인 것을 모두 갖추었다 하더라도, 정성들여 주는 그런 맛을 알게 된다면 남자는 교만해질 수 없습니다. 대등한 자리에 설 수 없다는 거예요. 미안해 하게 된다는 거예요. 그렇지요? 미안해지게 되는 거예요. 그 미안해진다는 것은 벌써 점령당했다는 말이라구요.

이렇게 정성에는 모든 소원성취가 안 되는 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이 맞는 말이라구요. 한국의 격언에도 '지성이면 감천이다'라는 말이 있지요? 다 맞는 말이라구요. 교만에는 전부가 이탈이요, 배타요, 배반입니다. 이렇게 되는거라구요.

여러분 선생님을 좋아해요?「예」 좋아는 하지만 사랑할 줄은 모르지요? 선생님을 사랑하고 있다는 사람 손들어 봐요. 내리라구요. 얼마만큼 사랑 하느냐? 자기 여편네보다 더 사랑해요? 문평래! 어때? 실감이 안 나지? 자기 아버지 어머니 이상 사랑해 봤어요? 실감이 안 나지? 원리는 그런데 내용은 안 그렇다는 거예요. 그것은 여러분이 아직까지 두 세계에서 한 세계에로 갈 수 있는 해결점을 보지 못한 거예요. 여러분들은 중간 입장에서, 삼팔선에서 왕래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데리고 하늘의 일을 하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그는 불쌍한 사람입니다. 통일교회 책임자들이 그렇다면 통일교회 문선생은 불쌍한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불쌍한 그것으로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내가 여러분을 만났으면 만난 사람으로서. 인연이 있으면 인연이 있는 만큼 여러분이 그 인연을 거쳐온 이상 내가 책임을 다 한다 이거예요. 알겠어요? 그러면 나는 여러분들 앞에 참소를 받지 않을 것입니다.

선생님이 제일 염려하는 것이 그거라구요. 여러분들 앞에 제일 고생했다는…. 여러분 고생했다고 말하지요? 어디 '나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고생했다' 하는 사람 손들어 보자. '나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몇 해 동안 고생했다' 하는 사람, 자기 마음에 '나는 고생했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들어 봐요. 있을 거라구요. 그렇지만 선생님 앞이라 할수없으니 눈을 껌벅껌벅 하고 이러고 바라보지, 마음속 복판에서는 전부 다 '나는 고생했다' 이럴 거예요. 고생해 가지고 뭘했느냐? 고생했으면 고생한 대가가 있어야지, 문제가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문제가 간단하지 않다는 거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