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전체로부터 시작된다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71권 PDF전문보기

행복은 전체로부터 시작된다

자, 이와 같은 원칙을 중심삼고 볼 때에, 오늘날 '나'라는 것은, 언제나 '우리'를 대표한 입장에 서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나'는 '우리'를 위하지 않을 수 없고, '우리'를 세우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오늘날 어떤 사회제도에서 이러한 것을 망각하게 될 때, 그로 말미암아,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혼란을 당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혼란을 당하는 거라구요. 어떤 나라면 나라,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 국민을 위하여 서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국민을 망각하고 자기 자체를 국민 이상의 것으로 생각하게 될 때, 여기에서 독재자의 실현이 가능하다는 사실, 이것은 역사가 용납하지 못하고, 시대가 용납하지 못한 다는 것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습니다.

'내가 행복해야지, 내가 행복해야지!' 하는데, 행복하기를 바라는 것은 좋다 이거예요. 그러면 좋겠지요? 그렇지만 내가 행복하기를 바라느냐, 우리가 행복하기를 바라느냐 생각할 때, 어느 것이 좋아요?「우리가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거 왜 그래요? 아까 내가 가깝다고 했으니 내가 행복해야지. 또, 내가 행복하기를 바라느냐, 우리 집이 행복하기를 바라느냐 할 때는 어때요? 우리 통일교회가 행복하기를 바라느냐 할 때는 좀 막연하지만 내가 행복하기를 바라느냐, 내 집이 행복하기를 바라느냐 할 때는 어때요? 그럴 때는 좀 달라진다구요. 그렇지요? 내가 아무리 행복 하다 해도 여편네가 저녁 때 문을 열고 서서 '요놈의 사내야, 왜 이제 들어와!' 이러면 그 행복은 다 깨지는 거예요. '요놈의 사내야, 지금 들어오는 게 뭐야!' 하며 멱살을 잡으면, 그것 행복해요?「아닙니다」 행복했더라도 그것은 헛행복이예요. (웃음) 좋다 마는 거라구요.

이러한 관점에서 가정을 볼 때에, 남편이 행복해야 되겠지만 부인도 행복해야 되는 거예요. 부모도 행복하면서 자식도 다 행복해야 된다구요. 다 행복해야 하는 데 누가 그렇게 다 행복하게 만드느냐? 아버지만 만들어 가지고 돼요? 엄마 아빠만 만들면 돼요?「안 됩니다」 안 된다구요. 온 가족이 다 행복하게 만들어야 됩니다. 그러므로 가정의 행복은 자기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로부터 시작한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다구요. 대한민국의 행복은 어떤 특정한 계급, 잘사는 사람이 행복하다고 해서 대한민국이 행복한 것이 아니예요. 전체가 다 잘살 수 있어야 대한민국이 행복하다고 할 수 있는 거예요. 그렇게 되지요?

대한민국 국민, 전체가 다 잘살고 행복하려면 국민 전체가 하나되어 잘살 수 있는 데에 협조하는 길밖에 없어요. 이렇게 함으로써만이 다 행복하게 잘살 수 있는 길이 열려지는 거예요. 그러지 않고, '그것은 나는 모른다. 나만 잘 되면 된다' 하게 되면 그것은 불가능한 거예요. 그것은 말로 끝날 뿐이지 그 소망의 성사라는 것은 불가능한 거라구요.

이렇게 보게 될 때에, 오늘날 통일교회 교인들, 지구장이면 지구장 교역장이면 교역장들이 그럴 거예요. '당신 통일교회에 들어와 몇 해 됐소?', '10년 하고 몇 해 됐는데…, 15년 됐소' 또, 어떤 사람들은 '몇 년 됐소, 몇 년 됐소' 이럴 겁니다.

출발 당시에는, 자기가 발을 들여놓을 때는 통일교회를 위해서 들여 놓았어요. 통일교회를 위해서 발을 들여놓았느냐, 자기를 위해서 들여 놓았느냐 할 때는, 헌신하겠다고 하며 나서게 될 때는, 자기를 위해서 헌신 하겠다고 나선 사람은 하나도 없다고 본다구요. 안 그래요?「그렇습니다」 내가 이 민족을 위해서 생명을 바칠 각오하고, 우리 통일교회야말로 이 민족을 구할 수 있는 사명을 지녔기 때문에, 내가 희생할 것을 각오하고 민족을 위하여, 세계를 위하여 통일교회 앞에 헌신한다!’ 이러한 순수한 생각을 가지고 나왔어요. 그렇지요?「예」

그런데 가다 보면, 한참 가다가, 동쪽으로 가다가 한 대 뻥 맞고 끄떡 했다구요. 가려는 힘보다 더 강하니까. 또, 이리 가려다 또 한 대 얻어맞고, 가려는 힘보다 큰 힘으로 말이예요. 자, 이게 이렇게 가도 한 대 맞고, 저렇게 가도 한 대 맞고, 앞으로 가다가 한 대 맞고, 뒤로 가다가 한대 맞고, 눈이 멍청해지는 거예요. (웃음) 그럴 때가 있다구요. 자, 이거 반대도 심했지만, 그 반대받으면서도 지금까지 잘 극복해 나왔습니다. 헌데 살림살이 하려니 돈이 필요해요, 또 어디 외부에 나가 강의를 해야 하는데 양복 하나 번드르한 것이 필요하고 말이예요. 또, 신발을 보니 찢어져 가지고 더덕더덕하고 말이예요, 위신상 체면상 이래서는 안 될 텐데 이게 신발도 다 떨어져 있어요. 이러한 모든 부대 조건이, 필요한 것이 많다구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것들을 하나도 갖추지 못 하고 쪼르르 해 가지고 꾀죄죄한 모습으로 가서 강단에 나설 때는 이게 뭐예요. '아이구, 부끄러워'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나섰는데 그래도 말은 곧잘 해요, 그래도. (웃음) 그래도 말은 곧잘 하기 때문에 대중의 박수 갈채를 받고 난 다음에 야, '아, 이제야 됐구만!' 하고 체면이 선다구요. 강의를 한참하고 돌아올 때에야 비로소 꼬부라졌던 허리를 펼 수 있는 거예요. 이래 가지고 자 이게 돌아와서도 버젓하지는 못하다구요. 그렇지 않나?

몇 푼 안 되는 양복이지만 입고 자가용차 에다 태를 갖추어서 떡 버티고 앉아 아주 흡족하게 환영을 받고 그러면 얼마나 기분이 좋겠어요? 그렇지요? 이렇게 됐으면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을 텐데 그런게 못 된다면 어떻게 하겠어요? 어떻게 될 것이냐 이거예요. 그렇다고, 양복이 없다고 해서 남의 양복을 달랄 수 있나, '야야 이웃 동네 우리 통일교회 아저씨 보고 그 양복 나 주소' 하며 달라고 할 수 있어요? '당신은 그 옷을 입어야 농촌이나 돌아다니고 할 거 아무 쓸데없으니 당장 내게 필요하니 나주소!' 그럴 수 없다구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 양복을 내가 입기 위해서는 '그와 나와는 형제지 심정으로써 그가 하는 일과 내가 하는 일이 같다' 하는 것을 느껴야 됩니다. 이 일을 하나 그 일을 하나 마찬가지인데 더욱 가치 있는 일이라면, 혹은 교구장이나 교역장 혹은 교회장님이 하는 일이 자신이 하는 일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이라는 것을 서로가 알게 될 때는 자동적으로 빌려주는 거예요. 알겠어요? 그렇지만 자기를 중심삼고, 그런 심정적 내용이라든가, 위할 수 있는 어떠한 바탕을 무시해 가지고는 절대 자기의 소원 성취는 안 되는 거예요. 만일 그것을 강제로 하면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 통일교회 식구들은 심정일치를 논의하게 되는 것입니다. 없다고 슬퍼하지 말고, 있다고 자랑하지 말며, 없더라도 하나될 수 있는, 우리끼리는, 너와 나와는 같다, 너와 나와는 한 목적이다 할 수 있는 상대적 여건만 갖게 되면, 거기에서는 무엇이든지 만들어낼 수 있고, 새로운 입장에서 협조할 수 있는 길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장은 자기만 생각해서는 안 돼요.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행복이나, 좋은 모든 것은 혼자만으로는 되지 않는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