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에서부터 선교활동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
1945년에 들어서면서 선생님이 무엇을 했느냐 하면, 신령한 단체와 연결하는 놀음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와 같은 섭리의 뜻 가운데서 하늘이 세운, 한국 내에 준비된 신령한 단체들을 묶어 가지고 통일교회가 국가 재건과 더불어 새로운 기독교 부흥 시대가 올 때 선두에 서 가지고 민족을 지도하는 입장에 섰더라면 국가를 움직이는 것은 당연한 이치요, 국가를 움직였다면 그다음에 유엔군을 중심삼고 전세계와 연결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이 새로운 단체들은 감옥에 들어가 고생을 했고, 또 영계에서 계시를 받기 때문에, 새로운 역사를 지니고 있으므로 기독교를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정부와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되었더라면, 신사참배한 기성교회의 모든 지도자들은 전부 다 절개를 잃어버린 입장이기 때문에 다시 부흥해야 했으므로 그들을 완전히 지배하면 그들은 지도받게 되는 거예요. 그러면 기독교 중진들을 중심삼고 지도할 수 있는 것이고, 그렇게 되면 대한민국의 내각을 중심삼고 세계로 연결될 것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그랬으면 1948년, 정부수립과 더불어 세계적인 기반을 닦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들이 불신함으로 말미암아 그러한 때를 놓쳐 버리게 되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원래는 통일교회가 기독교 위에서 출발을 해야 했는데, 결국 기독교가 통일교회와 선생님을 반대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선생님이 책임을 못 했느냐 하면 선생님은 책임을 했다는 것입니다. 신령한 단체를 전부 다 연결하려는 놀음을 했고, 기성교회를 연결하려는 놀음을 했지만 그들이 믿지 않고, 듣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결과를 초래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신령한 단체들이 닦아 놓은 모든 터전을 조건적인 입장에서 인수하는 조건을 세워 가지고, 구약시대와 신약시대와 같은 이 기반들을 연결시켜 가지고, 성약시대의 터전 위에서, 국가 기반을 통해서 세계로 향하는 본격적인 시대를 맞은 것이 아니라, 조건적인 기초를 세우는데 노력하여 가지고 그러한 조건을 세움과 동시에 반대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적극적인 반대를 받게 된 것입니다.
그러한 입장에 섬으로 말미암아 결국, 그때 한국은 둘로 갈라져 있었는데 남한은 뜻을 이룰 수 있는 기반이 못 되었기 때문에 이북을 찾아 들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북한에 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거기는 공산권입니다. 공산권에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