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을 따라 나오는 네 종류의 사람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89권 PDF전문보기

뜻을 따라 나오는 네 종류의 사람

그러한 자리에서 볼 때, 옛날에 뜻의 길을 보통시하고 있던 자리가 얼마나 동경되느냐 이거예요. 여러분은 그런 걸 느끼지 않을 거라구요. 여러분이 지금 이렇게 가니까 그래요. 그런 차이가…. 그러한 자리에 있는 여러분들이 지금 뭐 이렇게 어렵게 간다고 하지만 아무리 어려움이 있고, 아무리 비참한 일이 있더라도‘그 자리에 계속해서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겠나' 하며 그들이 동경하는 고민에 비할 수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뜻의 길을 따라 나오다가 떨어진 사람끼리 모인다 이거예요. 교회는 문을 열어 놓고 그 사람이 들어오려면 들어오라고 하는 거예요.

선생님이 그들이 나갔다가 들어온다고 해서‘너 이렇게 들어왔구나' 하며 책망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대해 준다구요. 그들도 형용할 수 없는 그 무엇이랄까, 그 부끄러운 것이나 자기 자신에 대해 질타하고 후회하는 표정이라는 것은 말할 수 없다는 거예요.

‘전체 식구들이 나를 이렇게 보겠지' 하는 스스로의 생각이 전부를 구속해 버리는 거예요.‘선생님이 나를 볼 때 이렇게 보겠지' 하는 생각이 전부 구속해 버린다 이거예요. 그리고 진심으로 대해 줘도 진심으로 대해 준다는 생각이 안 든다구요. 암만 위로해 주더라도, 위로하는 말을 하더라도 그것은 일시적이예요. 자기를 위로하는 데도‘너는 이러한 사람이지' 하는 생각을 갖고 위로해 준다고 본다구요. 자기가 이제 들어와 가지고 뜻을 위해 뭘한다 하더라도 사람들이 '또 가다가 떨어질 사람이다' 이렇게 본다는 거예요. 그리고 때가 지나감에 따라서 36가정이라든지 이렇게 축복가정의 계열이 쭉 생겨나고, 또 나이가 20, 30이 지나감으로 말미암아 통일교회가 발전해 가지고 기반 닦아 나오는 그 모든 것을 볼 때에, 자기가 상상하던 이상으로 벌어져 나간다는 거예요.

그러한 과거를 생각해 보게 될 때 오늘도 그러한 과거를 남길 수 있는 입장이 연속되고 있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다구요. 그러한 환경에 부딪히기 때문에‘한국이면 한국, 일본이면 일본에 살지 않고, 외국에 나가 가지고 거기에 통일교회가 있으면 거기서 믿어야 되겠다' 이런 사람도 있다는 거예요. 그렇지만 미국이 다르고 구라파가 다른 것이 아니라 통일교회는 다 선생님의 휘하에 있기 때문에…. 요즈음에는 한국 사람들이 교류하여 세계적인 교회가 되는 거예요.

이러한 것을 볼 때에, 통일교회를 믿던 사람들이 앞으로 지구성 어디에 가서라도 스스로 마음의 위로를 받을 곳이 없다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또, 영계에 가서도 그럴 것이 아니냐 이거예요. 여러분에게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은, 우리 일생 가운데 한번 잘못한 것이 얼마만큼 치명적인 영향을 준다 하는 것을 알아야 되겠기 때문입니다. 그 환경을 벗어나기란 지극히 어렵다 이거예요.

여러분, 감옥 같은 데 가면 이와 같은 일들이 실감난다는 거예요. 자기는 올바로 살겠다고 하던 사람인데 어떤 우연한 기회에 친구를 잘못 만나 가지고, 혹은 어떤 사람을 만나 가지고 실수함으로 말미암아 감옥살이를 하는 거예요. 일생을 감옥에서 살아야 하는 놀음이 벌어지면 언제나 무슨 생각을 하느냐? 시간만 있으면‘아이구! 그때 요런 일을 안 했으면 요렇게 되었을 것인데, 내 꿈이 실현되었을 것인데, 요렇게 함으로 이렇게 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는 거예요. 그 경지에서 벗어나기란 참 힘들다는 거예요. 내가 이렇게 안 했으면 틀림없이 요렇게 좋은 사람이 되었을 것인데, 이럼으로 말미암아 이렇게 됐구나…. 그거 무슨 말인지 이해돼요?「예」 그러한 종류의 사람이 있다는 걸 알아야 돼요. 그런 사람은 비참한 사람이라구요.

그다음에는 통일교회에서 오래 된 사람, 통일교회에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 이거예요. 남아 있으면서 뜻의 길을 간다고 했지만 과거로부터 10년 20년을 지내 오면서 그 동안 뭘했느냐 이거예요. 원리가‘가야 할 길은 이렇게 가야 된다. 이렇게 가야 된다' 하는 모든 것을 제시했지만, 그것을 전부 다 실천하지 못하고 그냥 따라오는 사람이 있어요.

그런 사람들은 어떤 사람이냐? 과거를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기간이 오래 되었다고 하면 할수록 부끄러움을 느끼는 사람이예요. 그래서 습관이 되어 가지고 어정어정 왔다갔다하고, 주일날도 왔다갔다하는, 진전도 없이 그저 그냥 정지상태에서 따라나온 사람들이라구요. 뜻을 위해서 무엇을 의욕적으로 실천한 경력이 없기 때문에, 남이 좋다 나쁘다 해도 좋은지 나쁜지 무감각하다는 거예요. 그렇게 10년을 지내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이러한 자리에 있구나' 하며 부끄러움을 느끼는 사람이 있더라 이거예요.

그다음에는 어떤 종류가 있느냐 하면, 뜻의 첨단에 서 가지고 노력을 하고도 더 하려고 노력하는 종류의 사람이 있는 거예요. 사람 중에 자기가 선두에 서서 일을 한 것이 어느 정도까지 성과가 있다고 자랑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직까지 자기는 갈 길이 멀다고 하며 도리어 과거에 했던 그것이 부끄럽다고, 뜻이 요구하는 그 점에 부끄럽다고 참 부끄러움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 이거예요.

이러한 종류의 사람들을 생각해 볼 때, 그래도 어떤 사람이 최후의 전선을 지키겠다고 하느냐? 모든 생애를 전부 다 희생시키더라도 거기에서 부족함을 깨닫고 더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스스로 자기를 책하면서 가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결국은 끝까지 남아지더라 이거예요.

이렇게 볼 때, 뜻을 배반하고 떠났던 사람과, 그다음에는 중간적인 입장, 아직까지 세상과 격리되지 않고 그냥 그대로 세상인이나 마찬가지로 중간 입장에서 왔다갔다하는 사람과, 그다음에는 뜻을 위한다는 입장에서 자기를 중심삼아 가지고 조금이라도 했으면 그것을 자랑하려고 하는 사람과, 그다음에는 모든 것을 뜻적인 입장에서 자기 자체를 살피지 않고 자기를 희생하면서라도 부족함을 느끼는 이런 네 종류의 사람을 두고볼 때, 남는 사람은 맨 나중의 사람입니다.

이러한 맨 나중의 타입의 사람이 어떤 종류의 사람이냐 이거예요. 이러한 타입의 사람이 어떠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더냐? 그는 복귀의 길이라는 게 어떻다는 걸 아는 사람이다 이거예요. 복귀의 길을 어떻게 가야 된다는 것을 생각하는 사람이다 이거예요. 복귀의 길은 개인을 넘어서, 가정을 넘어서, 종족을 넘어서, 민족을 넘어서, 국가를 넘어서, 세계를 넘어서 하나님 앞에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면 갈수록 더 노력해야 된다는 관을 가진 사람이다 이거예요.

그러면 그런 사람 가운데, 한국이면 한국에 있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세계적 레벨까지 넘어갈 수 있겠느냐 이거예요. 거기에서 상징적이라든가 실체적인 무엇을 생각하면서‘내가 이렇게 고생하는 것은 이 한국 백성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전세계 인류를 대표해 가지고 내가 고생하는 것이다' 이래야 된다구요. 그런 사람들의 생활 이면을 가만히 보면 많은 정성을 들인 사람입니다.

이렇게 볼 때에, 오늘날 여기도 마찬가지예요. 이 가운데서도 지금은 뜻의 길이니, 뭐 어떠니 다 이러지만, 그런 종류의 현상이 이제부터 연속된다 이거예요. 그러한 것을 생각해 볼 때, 여러분 스스로는 어떤 종류의 사람이 되어야 되겠느냐 이거예요. 이걸 전부 다 결정해야 되겠다구요. 여러분들은 이 뜻을 떠나지 않은 현재의 입장에서 마음으로는 여러 가지를 했다 이거예요. 마음으로는 들어갔다 나왔다했지만 몸뚱이는 아직까지 그러지 않은 입장에 있으면 언제든지 새로운 결정을 해 가지고 앞을 향하여 전진하지 않으면 안 될 운명에 처해 있는 걸 여러분이 알아야 된다구요.